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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7일 지하실 습도와 탈모 속도의 관계

by 안숭범

스파르타 방패 같은 위성방송 안테나가 달렸다

비가 오면 난시청 지역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

신한국에서는 신도시라고 아버지는 목청을 높였다

볕 들지 않는 사랑채는 먼 기억과 허물어졌고

곤로에서 녹던 것에 대한 기다림도 철거되었다

찌꺼기 나오는 수돗물을 마신 목소리로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하고 떠드는 철부지들

첫 소절에 숨이 차는 노래들로 변성기를 경쟁했다

과도한 오락이 지능계발에 좋지 않다는 표어 아래에서

파이널 파이트, 스트리트 파이터, 킹 오브 파이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데, 아버지에게

뺨 맞은 어머니들은 아들의 종아리에만 길을 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라지만

남매는 점점 작아지는 방에서 키를 키웠다

한낮 골목에는 전단지처럼 붐비던 또 다른 아버지들

아파트를 올려다보던 울 아버지는 지하로 내려갔다

창고의 반쯤 줄어든 연탄들 사이에 책상이 놓였다

우리 집은 과연 수험생으로 부자였다

부엌 없는 집이어서 케이크 없는 생일은 공평했고

주택관리사를 주둥이 관리사라고 한 게 부정 탔다고

라면과 라면 사이에서 핑계가 끓었다

아버지, 누나가 아버지가 될 남자를 데려왔어요

번개표 전구 필라멘트보다 앞서

아버지 머리카락과 기타 등등이 끊어지던 나날

옛 골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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