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이 솜눈과 적요에 함박 덮였다
사람을 구경하는 몇몇 동물만 겨울을 길들이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의 그림을 완성하기 좋은 날이었다
심야영화 첫 장면에 나올 법한 원시적인 하늘이었다
이파리 없는 나무들은 생각 없는 감정에 떨고 있었다
귀밑머리로 숨어든 바람이 대승적인 전망을 속삭였다
숫눈을 찰 때 생기는 눈갈기에도 마냥 깔깔댔다
말대로 그려지는 풍경화가 도착하고 있었다
길게 생존할 장면이 될 것을 알고 순간들을 굴렸다
드디어 몸을 만난 눈사람 머리에 서로의 이름을 썼다
겨울에서 겨울로 부는 바람도 그림에 갇히고 있었다
내민 입김에 서로의 손바닥이 더 붉어졌다
우리 손바닥의 미열에 수천 미터의 사연이 녹고 있었다
각자의 손바닥에 난 길들을 완전히 포갰다
내가 감촉한 건 꿈이 되는 물이었다
그녀가 물이 되는 꿈을 말하기까지
한번은 모르는 계절에서 은유가 없는 편지가 왔다
그런 고요는 처음이라 모든 소리가 달려와 어지러웠다
어떤 평행세계에도 순백의 동물원이 있다고 했다
원시적인 하늘 아래로 태고의 노래가 내린다고 했다
다른 풍경화에서는 지금도 비밀이 탄생한다고 했다
달밤에 조용히 뒤척이던 곡선들 아주 잦아들고
솜눈이 다시 수천 미터를 되돌아가면서 하늘이 닫혔다
육신으로만 남은 눈사람은 제 영혼을 찾지 않았다
그날 동물들은 물이 되는 사람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다음 겨울이 없는 은하계에서 별 하나 폭발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만난 고양이 죄 없이 자책을 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