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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숭범 Jul 17. 2023

2022년12월24일 눈에서 나는 비 냄새에 관한 소고

   1986년 장맛비는 2022년의 흰 눈이 되었다  

   

   할머니 도루코 새마을 칼은 어디로 갔을까

   쑥국을 끓이던 손에 대한 기억이 

   몸 안에서 하는 일들을 생각한다      


   물에 잠긴 말들은 이미 바다로 흘러갔다

   38선과 휴전선 사이 폭우에 한 이름이 유실된 후

   길고 긴 가뭄에 가족들은 쩍쩍 갈라졌다

   가뭄이 끝나면 다시 폭우여서, 가난과 

   가장이 만나는 공사판에서 아버지는 

   빨갛게 침수되는 대문을 걱정했다    

 

   운동회가 끝나면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소란한 침묵처럼 만국기 아래 서 있곤 했다

   눈을 떠도 감아도 주먹 쥔 이승복의 맞은편

   휘휘 저어도 물리칠 수 없는 공기에 갇히는 일

   할머니 등에 장맛비와 함께 업혀 돌아오던 길

   1986년의 냄새, 장―마 냄새     


   그 냄새가 아직 내 몸을 떠돌고 있었구나   

  

   뾰족한 손가락들이 낸 구멍들을 거느리고

   할머니는 자기 구멍들의 깊이로 내려간 것

   군락을 이룬 증손주들은 허공을 굴리며 놀고  

   원수들은 흩어질 때보다 뿔뿔이 모였다지만

   할머니 혹은 구멍을 배웅하며 가냘파지는 흰 눈    

 

   안녕, 아무 일도 없던 날의 투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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