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도에게
아빠는 주변인일까? 정확히 말하면, 아빠는 아빠가 주변인으로 살기 원한 거 같아. 항상 주변인, 혹은 비주류이기를 바라는.
한때 아빠는 경제학도의 꿈을 가진 적이 있어. 주류 경제학에서도 성적이 제법 괜찮았거든.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경영대에서 모두 어려워하는 경제학과로 이중전공하러 온 아빠를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했지.
생각해 보니 아빠는 대학에서도 주변인으로 살았구나. 경제학도도 경영학도도 아닌, 이중 전공자.
경제학과에서 아빠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비주류 경제학이었어. 운동권이었던 다른 친구들처럼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땐 처음 들었던 진화경제학에 좀 심취했었어.
고려대 박만섭 교수님께 상담했을 때, 교수님이
자넨 경영대 학생이라 하지 않았나? 이건 왜 하려 해? 비주류 경제학은 힘들어. 일단 고민 더 하고 와 봐.
이 말씀이 지나고 나니 얼마나 고마운지. 덕분에 아빠는 경영대학원에 진학했고, 그때 네트워크 이론에 빠져서 그리로 유학을 가길 결정했어. 왜? 좀 더 인정받는 학문을 하고는 싶었지만, 기업들이 돈 더 버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거든. 이것도 비주류인거지. 경영대 교수가 돈 버는 방법을 모르니.
어느 분야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 분야 안에서의 지위는 불안정한. 이걸 사회학에서는 중간 지위라고 하는데, 아빠가 이 이론을 좋아하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야. 주변인은 다른 말로 중간 지위자로 사는 거거든.
주변인이면 불편한 게 많아. 어딘가 속해 있지만 완전히 속해 있진 않은. 어디 가서 내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잊히거나 무시당하기 쉽지.
하지만, 내가 주변인이기 때문에 쉽게 교만해지기도 어려운 것 같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정체성을 찾아야 하니까.
너희가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 너희는 주류로 살 수 있을까? 그러면 편할 텐데. 너희 성향이 그걸 편안해 할 수 있을까? 아빠 닮았으면 주류인 게 불편할 텐데.
혹시… 너희가 주변인이라 느낄 때가 있으면 아빠를 기억하렴. 주류에 들어가지 못해도 돼. 덕분에 너흰 바깥사람들이랑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주류 사회를 너무 비판하진 말아. 너희도 한 발쯤은 주류 사회에 담가놓고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 그들을 쉽게 무시하거나, 반대로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겠지.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때론 바깥의 사람들이 주변인인 너희를 타고 주류 사회로 들어갈 수 있길 바라. 아빠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입으로만 말고, 아빠의 선택이 그랬으면 좋겠어.
너희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