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도에게
삶은 너희가 원하는 대로만 가지는 않을 거야. 너희가 다 통제할 수 없거든. 때로는 계획과 목표를 수정해야 하고, 언제든지 계획을 수정할 그럴 준비를 해야 할 거야.
아빠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유럽 학교로 유학을 가고, 동남아에서 그렇게 오래 살고,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야 미국 땅을 밟을지 몰랐어. 아니, 생각해 보니, 경영대학에서 일할꺼란 생각도 못했던 거 같아.
어려서는 역사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단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책도 많이 읽었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해서 한국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거 같아. 옛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
그런데 너희 할머니의 조언으로 학부는 경영대를 가보기로 했어. 사람들에 관한 학문이라고 했거든.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랑 눌러 살던 피시방이 정경대 쪽이었고, 경영대 수업은 자주 가보지도 않아서 그런지 경제학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 그래서 이중전공을 하기로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더라고. 경영대생이 굳이 경제학과에서 고생하며 공부한다고.
아빠는 경영대가 좀 안 맞았어. 근본적인 고민보다는 현실에서 어떻게 돈을 벌까라는 대화가 더 많은 수업 시간이 나에겐 맞지 않은 옷 같았어. 수많은 팀플도 그렇고.
경제학과에서도 소위 주류 경제학에 대해선 관심이 안 가더라. 아빠는 운동권도 아니었지만, 비주류 경제학에 더 관심이 많았고, 웬만한 운동권 선배들보다도 막스 경제학에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대학원을 진학할 때 전공을 정해서 지원해야 하는데, 아빠는 끝까지 경제학과 경영학 사이를 고민했어. 어렴풋이 할아버지가 그런 고민을 하실 때 동전 던져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지원서 접수 청구에 앞에서 동전을 던지고, 그 결과대로 과를 기입해서 제출했지.
경영대학원에서 네트워크 분야에 푹 빠져 살며 유학을 준비하고 당연히 미국으로 갈 줄 알았지만, 프랑스/싱가포르 학교에 합격할 줄이야. 어렵게 통과한 풀브라이트 장학금도 포기하고, 그렇게 아빠는 싱가포르로 향했단다.
그 뒤로도 계획대로 된 게 없단다. 홍콩, 텍사스는 모두 직장 인터뷰할 때 처음으로 가본 거거든. 그렇게 이곳까지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이런 경험들 때문에 아빠는 살면서 방향과 계획은 세우되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했어. 이제는 그게 좀 익숙해진 것 같아.
앞으로도 우리 가족에 다시 한번쯤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해.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이곳에 왜 이 시간에 오도록 했는지는 아빠도 몰라. 하지만 이 길을 걷다 보면 알게 될 거란 확신이 있어.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감사하고, 또 다른 길이 열릴 때를 위해 준비되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우리 그런 유연한 마음을 갖자.
너희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