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도에게
오늘은 꾸준함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싶어.
아빠는 연습을 싫어했어. 반복하는 게 너무 싫었거든. 너희가 이미 들었겠지만, 아빠 어렸을 때 이야기 하나 해줄게.
할머니도 결국 엄마이니까, 아빠가 피아노를 배웠으면 했어. 당시에도 쉽진 않겠지만, 집에 피아노도 하나 사놨어. 할머니도 피아노를 못 치니까, 그건 아빠가 치라고 산 거겠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피아노 학원도 몇 군데 다닌 것 같아. 몇 번 이사를 했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노력하셨어.
근데, 아빠는 피아노가 너무 싫었어. 똑같은 거 계속 연습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어. 물론, 재능도 없었던 것 같아. 손이 크다는 것 말고는. 선생님은 자꾸 앞마디를 보며 쳐야 한다는데, 아빠는 그게 안 됐어.
결국 학원은 그만두고, 과외를 붙여주셨어. 한 달, 두 달쯤 지났을까? 할머니가 안 계시고, 아빠 혼자 있는데 과외 선생님이 오셨어. 너무 하기 싫은 마음에, 자는 척을 하고 선생님께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 한 삼십 분을 초인종을 누르셨나, 선생님은 돌아가셨고, 그 뒤로 할머니가 아빠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진 않으셨어.
나중에 후회한다는 소리나 하지 마라.
공식적으로 아빠는 후회하지 않아. 피아노 안 배운 것. 하지만, 아쉽긴 해.
반복이 싫었던 건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어. 공부는 곧잘 했지만 아빠는 100점 만점을 받아온 적은 별로 없어. 특히, 수학. 계산 실수가 잦았거든. 연산을 반복하지 않았으니, 계산 실수를 하는 건 당연하지. 그래서 예전엔 아빠가 수학을 못 하는 줄 알았어. 지금 보니 아빠는 산수를 못 하는 거야. 알파, 파이, 델타가 난무하는 경제학을 관념적으로 배울 때는 너무 재미있더라고.
너희가 아빠의 그런 본성을 닮은 것 같아서 좀 걱정이기도 해.
아빠는 언제 반복의 능력을 알게 된 것일까? 아마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때인 것 같아.
아빠 친구들 중에는 유럽 아이들이 많았어. 그중에 독일과 네덜란드 아이들이 참 대단해 보였는데, 이들은 매일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더라고. 한국 사람들은 학교에 일찍 와도 잠깐 눈 붙여야 하고, 점심도 잘 먹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고, 수다도 좀 떨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밤 9-10시까지 연구실에 붙어있을 때가 다반사였지. 그런데 같이 공부하던 게르만 족 아이들은 9시 출근, 5시 퇴근, 1시간 운동, 가벼운 점심, 이러한 루틴을 벗어나질 안더구나. 처음에 5시 퇴근하는 친구들을 보며, 저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들의 성과가 훨씬 나은 거보며 반성했지.
지금도 아빠는 반복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야.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루틴을 가지고, 반복하다 보니, 효율성이 늘어나고, 스스로 뭔가를 이뤄냈다는 효능감도 늘어나는 것 같아. 하루하루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지.
이 글로 너희에게 쓰는 편지도 이제 한 달이 넘었구나. 32번째 편지인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하루에 한 편씩, 여기저기 30분씩 투자하며, 꾸준히 올리니 스스로 자랑스럽기도 한단다.
너희도 반복을 통해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너희 아빠가
***** 꾸준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하루 열 분정도가 눌러주시는 라이크가 큰 힘이 되네요. 제가 구독자를 생각하며 쓰기 시작한 글들이 아니라, 좀 부족한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제 업 때문에 피드백을 받는 것이 익숙해서 그런 건지, 피드백을 좀 듣고 싶습니다. 브런치 선배 분들의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매거진과 북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는 초짜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