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도에게
오늘은 밸런타인데이구나. 한국에서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 주는 날 이래. 아빠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구나. 미국에서는 남자가 뭔가를 준비하는 날인 것 같아.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니? 어젯밤 둘째가 아빠한테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보는 걸 보니,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 할 시간들이 다가오는 것 같구나. 그건 천천히 이야기해 줄게.
아빠는 다 크고 나서야 너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졌었어. 두 분 다 감정적인 분은 아니기 때문인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생일이나 기념일도 챙길 줄 모르고 자기 공부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두 분에게 어떤 스토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거든. 남들이 보면 아마 중매 결혼하신 것으로 보일 거야.
오늘은 너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 나눌까 해. 계산해 보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소개팅으로 만난 시간은 60년대 중후반이었을 것 같아. 할아버지가 사관생도였을 때 만나셨던 것이니. 할머니는 교대를 막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계셨을 때였대. 두 분을 소개해주신 분은 할머니가 살던 반지하 방의 주인댁 아드님이었고.
할아버지에게 한 번도 할머니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는지 제대로 답을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아. 하지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몇 년 쫓아다셨어. 뭔가가 있었겠지? 할아버지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놀랄 일이야. 그렇게 감정에 움직이시는 분은 아닌데 말이야.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나온 연애편지들. 아빠는 아직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너무 오글거리거든. 좀 더 나이가 들면 읽어볼까 해.
계산해 보면 70년 초반에 결혼하신 것 같아. 놀라운 건, 두 분이 미국에서 결혼하신 거야. 미국에서 공부하시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미국으로 초대해서 할머니가 미국에 오셨고, 거기서 두 분 끼리 결혼하시면서 지금으로 말하면 스몰 웨딩을 하신 것이지. 지도교수님이 주례를 서시고, 같이 유학하시던 분들만 참석한. 부모님들은 오시지 않았어. 두 분이 장남 장녀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불효자가 아닐 수 없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너희는 절대 그러지 마라.
아직도 두 분의 이런 부분이 아빠는 상상이 잘 안 가. 아빠가 중학교 들어갈 때쯤인가, 할머니에게 연애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어. 대답도 제대로 안 하셨지. 대학을 가고,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걱정 마, 그 여자친구가 너희 엄마야--할머니에게 안 궁금하냐고 물어봤어. 한 번도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신 적이 없었거든. 결혼할 때나 되면 이야기하라고 하셨는데 말이지. 아빠가 지금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대답해 주실까?
할머니는 왜 미국에 따라가신 것일까? 어떤 용기로. 여자가 홀연단신으로 말이야. 아빠에겐 여전히 놀라울 따름이다. 다시 말하지만,
너희는 절대 그러지 마라.
너희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