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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이름

by 용간

라시도에게


너희 이름의 뜻이 뭔지 아니? 넓게 펼치고, 베풀고, 길이 되어 사람들을 품으라는 뜻이란다.


엄마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태몽이라고 할 만한 꿈을 꾸진 않았어. 하지만, 너희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가졌던 비전들은 있어.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을 품어주고, 기쁨이 되어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들이 되어줬으면 해.


아빠는 어렵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단다. 어렸을 땐 그게 싫었어. 이상하지? 남들은 이런 집에 태어났으면 부러워했을 텐데. 얼음이 나오는 냉장고가 있는 우리 집에서 놀고 있으면, 친구들이 참 부러워했지. 아빤 좀 우쭐댄 것 같기도 한데, 마냥 기분이 좋진 않았어. 남들이 나를 다르게 취급하는 게 싫었고, 그래서 부모님 도움을 받기 싫었던 거 같아. 부모님으로부터 많이 도움 받지 않았다고 항상 되뇌인 거 같아.


그런데 크고 나서 돌아보니, 알게 모르게 도움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 남들보다 일찍 해외도 나가보고, 모두가 학자인 집이라 남들보다 일찍 연구란 무엇인가도 알 수 있었던 거 같아.


그래서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어. 남들과 같은 조건에서 성공했다고, 그렇게 알아달라고 외치기보다 남들보다 조금 앞서게 시작했다는 걸 인정하고, 내가 남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한다고.


너희도 받은 것이 많은 아이들이란다. 그게 부가 아니어도, 아빠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 많거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아빠가 너희를 위해 이렇게 글도 남기지 않니?


너희가 스스로 축복받은 사람이란 걸 알았으면 해. 하지만 그걸로 너희 스스로의 안위만을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아니, 그러면 안돼. 너희는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단다.


그게 너희 이름의 무게야.


그런 무게를 줘서 미안하다. 하지만, 그걸 잘 이겨낼 너희의 미래를 생각하니 자랑스럽기도 해.


너희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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