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는 전망대가 많다. 고도가 높고 탁 트여있으면 일단 다 전망대인 것 같은 정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뷰가 끝장나니 죄다 전망대로 이름 붙이는 것도 영 이해가 간다. 흔히 전망대라 함은 바다나 산, 호수 등 자연 경관이 목적인 경우가 많지만 리스본은 다르다. 바다 옆에 붙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망대의 목적은 주황색 지붕에 있다.
리스본은 신기하게도 지붕이 전부 주황색이다. '대충 봐서 그런가?' 하는 마음에 꼼꼼히 살펴봐도 온통 주황색 지붕뿐이다. "어떤 건물이든 지붕은 무조건 주황색으로!"하는 주황색지붕법이 있기라도 하듯 말이다. (진짜 그럴 지도?) 그렇지 않으면 리스본 주민들이 합심이라도 하여 주황 동네 만들기 운동이라도 벌인 듯 말이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인간의 필연적 본능인 관종력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리스본 사람들이라고 하여 관종력을 피해갈 수 있는가? 그럴 수 없고, 리스본 사람들은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붕을 건드는 대신, 건물 색을 통해 관종 본능을 해소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색으로 건물을 칠함으로써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등등.
잠시 색에 대해 짧은 식견을 적자면 주황색은 참으로 애매한 색이다. 딱히 잘 어울리는 색이 없고, 그렇다고 다른 색에 묻히지도 않는... 그러니까 한 마디로 골치 아픈 색이다. 그러다보니 건물에 분홍색, 하늘색 등을 색칠하는 것을 선택한 건물들을 보고있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집주인은 지붕과 어울리든 말든 그냥 아무색이나 튀는 걸로 고른 것이 아닐까? 그정도로 (미적감각이라곤 없는 내가 봐도) 이게 맞나? 싶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아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온통 주황색인 지붕들 밑으로 알록달록들이 모이면 그게 또 괜찮아보인다. 아니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아름답게 보인다. 이게 바로 조화란 건가. 이게 바로 색감이라는 건가. 그런 감탄들이 밀려온다. 각각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이 전체 속에 있으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러고보면 미술 수업을 할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도안을 주고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아이들은 각각의 개성대로 작품을 완성한다. 그 개성이 지나치다 못해 넘치면 개떡...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상상력을 방출해낸다. 그중 몇몇은 다소 이상하거나 다소 개떡같다. 필히 대충 끝내고 놀고 싶은 몇몇 학생들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개떡같은 작품들도 한 곳에 모아 게시해놓으면 이상하게 다른 작품들과 잘 섞여든다. 전체 속에 있으니 그런 대로 알록달록하게 보이고, 덕분에 게시판이 더 풍성해지는 것도 같다.
어쩌면 이것이 조화의 아름다움 아닐까? 전체적인 틀은 같되, 그 안의 세세한 부분은 다른 것. 자세히 뜯어보면 조금 부족해보일지라도, 전체 속에 있을 때 찬란한 부분이 되는 것. 그것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똑같은 것들보다, 기본 적인 틀조차 없는 무아지경보다 한 수 위의 예술이 아닐까? 갑자기 혼돈 속의 질서, 질서 속의 혼돈 같은 어디서 들어본 말들이 알록달록 떠오른다.
뭐가 가장 아름다운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한 순간 눈앞에 펼쳐졌던 리스본의 주황색 지붕들과 지금도 눈앞에 펼쳐져 있는 6학년 학생들의 미술작품들이 같지만 달라서, 다르지만 같아서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