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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Apr 18. 2024

교사. 이것만큼 모순적인 직업이 또 있을까.

 오늘은 지각을 했다. 아침잠이 많은 탓에 5분 정도 늦잠을 자고, 신호가 있는 족족 걸리고, 유달리 차가 많은 것이 겹치면 지각을 해버리고는 한다. 살금살금. 행여나 1층에서 교감선생님을 만날까 고개를 돌리고 복도를 확인한다. 다행이다. 아무도 없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웃으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침 맞이를 준비한다. 휴. 오늘 좀 늦었는데 안 걸렸다. 


 우리 반 김태양은 이따금 지각을 한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해. 그날도 김태양이 지각을 했다. 55분에 교실을 들어온 것이다. 참고로 55분에 의자에 착석하는 것까지가 지각이 아니다. 물론 내가 정한 것은 아니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그러자고 해서 따랐을 뿐. 55분에 교실을 들어온 김태양은 명백히 지각을 한 것이 맞다. 하지만 잘못한 걸 알고 살금살금 들어오는 김태양이 귀엽기도 하고,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못 본 척 하자.'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안 늦었으니까. 내일도 늦으면 그때 생각하자.'하고 넘겼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선생님 김태양 지각했어요. 쟤 청소해야 돼요."라고 말했다. 아. 흐린 눈 할 수가 없다. 모르는 척 넘어가려 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태양아, 내일은 지각하지 마."라고 말하며 칠판에 적힌 청소 명단에 김태양을 적는다.


 양심에 찔린다. 이것만큼 모순적인 직업이 또 있을까.



 우리 반은 욕을 하면 청소를 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정한 규칙이다. 듣자마자 바로 욕이라고 할 수 있는 말뿐만 아니라, D진다, 미친, 꺼져까지 욕설에 포함시켰다. 엄격하게 잡기 위함이다. 정예진은 습관적으로 친구들에게 뻐큐를 날린다. 친구들과 사이가 좋음에도 그런다. 해맑게 웃는 정예진에게 화를 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애써 눈살을 찌푸린다. 그리고는 말한다. "예진아, 매일 청소하기 힘들지 않니? 욕 좀 줄이자 응?" 김한율은 각종 욕설을 여자애들에게 남발한다. 꼭 여자애들에게만 그런다. 김한율은 공부는 싫어하지만 성격은 순둥하다. 나쁜 의도는 없었을 김한율에게 억지로 화를 내며 말한다. "한율아, 애들이 너 자꾸 욕한다던데. 고쳐보자. 응?" 


 나는 다른 욕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강아지의 어른 낱말과 결합하여 하나의 유행어처럼 된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어렵게 말했지만 사실 "개이득!"이다.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이 말을 할 때마다 입을 때렸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며칠 전 일이다. 친구가 좋은 소식을 내게 알렸다. 그 소식을 듣자 기분이 좋아서 그만 나도 모르게 외쳐버리고 말았다. "아싸. 개이득!" 말하고 나자 어깨에 힘이 빠진다. 입을 때린다. 아 또 써버렸네 이 말. 애들한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놓고.


 양심에 찔린다. 이것만큼 모순적인 직업이 또 있을까.



 이것 말고도 말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어머, 이건 화가 난 척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지도하지만, 사실 어릴 적 내 모습이기도 하다. 양심에 찔린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 걸까 싶다. 오늘도 다짐한다. 내일은 절대 안 늦어야지. 욕하는 습관 좀 고쳐야지. 아, 이것만큼 모순적인 직업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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