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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Jun 14. 2024

희영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결국 사랑은 다른 형태로 돌아오게 될 거야.

글쓰기 주제: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아마 대부분 잃어버리게 될 테지. 하지만 결국 사랑은 다른 형태로 돌아오게 될 거야.

Everything you love will probably be lost, but in the end, love will return in another way.     


제목: 희영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희영은 검은색 상복의 옷고름을 풀었다. 저승사자나 입을 법한 저고리를 벗고, 치마에서 다리를 하나씩 꺼냈다. 3일 동안 신어서 희미한 땀 냄새가 배어있는 검은색 양말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그리고는 한 평 남짓한 공간을 빠져나갔다. 며칠 전 급하게 나오느라 신고 온 짝이 맞지 않는 슬리퍼를 찾아 신고 통곡 소리가 아득하게 울려오는 복도를 걸었다. 입구를 나서자 몇몇 양복 입은 남자들이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그들을 곁눈질로 흘기다가 이내 하늘을 올려다본다. 얼마 만에 망막에 닿는 자연의 빛인지, 희영은 눈이 부신 듯 기분 나쁘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로써 희영은 부모를 모두 잃었다. 서른 살 봄이었다.     


 희영은 울지 않았다. 3일 동안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희영의 직장 동료들이 그녀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희영을 붙잡고 울어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겨 오는 그들의 등을 몇 번 두들겨 줄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별일 아니라는 듯. 둘째 날 저녁에 찾아온 현수를 보았을 땐 희영의 눈이 잠시 동안 붉어지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희영은 즉시 고개를 숙였고, 크게 심호흡을 했고, 얼마간 그 자세를 유지했으나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입꼬리에 힘을 주어 현수를 맞이했다.      


“어떻게 왔어.”


현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희영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주영 씨가.”


희영은 옆에 서있던 주영을 힐끔 쳐다봤다. 주영은 그런 희영을 못 본 척하고 현수에게 말했다.


“금방 왔네요. 현수 씨한테만큼은 알리고 싶었어요.”


현수는 울음을 애써 삼키고 주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잊지 않고 연락해 주셔서.”     


희영은 둘을 바라보다 이내 현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빠한테 인사해. 오랜만에 보는 거지?”


“응. 몇 년 전에 너 몰래 연락드리긴 했는데. 내가 아버지 진짜 좋아했던 거 알지.”


“알지. 아빠도 오빠 많이 좋아했어. 우리 아빠 성격에 그 정도 아꼈으면 말 다했지 뭐.”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는데...” 현수는 말 끝을 흐리고 고개를 숙였다. 현수의 안경은 언제부터 묻어있던 건지 모를 허연 자국들로 지저분했다.  


“그만 좀 울어.” 희영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현수의 등을 토닥여주기 위해 팔을 뻗다가 이내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거둬들였다.


 희영은 다음 날 바로 출근했다. 5일간 주는 경조사 휴가도 마다했다. 출근하자마자 쌓여있던 메일을 처리하고, 오후에 있을 협력사와의 미팅에 필요한 각종 화장품 샘플도 종류별로 준비해 두었다. 현수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은 신상품 개발 관련 자료를 복사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님은 잘 보내드렸어?”


 아무런 사진도 올려두지 않은 현수의 메신저 프로필을 보고 희영은 짐짓 웃었다.


“아직도 프로필 사진 아무것도 없네. 나랑 그렇게 싸웠으면서.”      


 답장을 보내고선 희영은 마지막 메시지가 언제인지 알기 위해 화면을 위로 올렸다. 메시지는 5년 전 12월 현수가 보낸 “지금 집 앞으로 갈게.” 이후 단절되어 있었다. 희영은 현수가 보낸 두 문장 사이에 5년이나 흐른 것을 확인하고 휴대폰 화면을 껐다. 휴대폰을 슬랙스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서 복사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했고, 앞머리를 뒤로 한 번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들어 5년 동안 무음이었던 메신저 알람음을 진동으로 바꿔놓았다.                    


 2년 뒤 희영은 서른두 살이 되었다. 창밖에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한 겨울날, 희영은 산부인과 병실에 누워있었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깬 희영은 정면으로 보이는 하얀 전등이 눈이 부셔 애써 뜬 눈을 다시 감았다. 그것도 잠시 고개를 돌려 보호자석을 살폈다. 그곳엔 현수가 있었다. 현수는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살짝 오므린 채로 앉아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지금 몇 시야?” 희영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현수는 책을 넘기다 말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영의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 시 조금 넘었어.”


“아기는?”


“아기는 잘 있어. 간호사한테 말해서 같이 보러 갈까?”


“응. 그러자.”


“알겠어. 물 좀 마시고 있어. 간호사한테 말할게.”     


 현수는 희영의 왼쪽 어깨 죽지에 자신의 팔을 끼고는 신생아실로 향했다. 희영은 불편한 듯 현수에게 몸을 의지한 채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걸었다. 신생아실에 다다르자 희영은 코가 유리창에 닿는 줄도 모르고 얼굴을 갖다 대었다. 유리창에는 희영의 코에서 나오는 따뜻한 숨으로 뿌연 자국이 생겼다. 창 너머에는 다섯 명의 아기들이 불행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희영은 다섯 명의 아기들 중에서 단번에 자신의 작은 생명을 알아챘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희영은 습관처럼 고개를 숙였고, 심호흡을 했다. 얼마 간 그 자세를 유지하려던 찰나 현수가 그런 희영을 알아채고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감지 못해 떡진 희영의 머리칼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 순간 희영은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이 뚝 끊어지듯 그렇게 왈칵. 쏟아내었다. 몇 분을 유리창 앞에 서서, 현수에게 몸을 기댄 채, 세상에 마치 셋 밖에 없는 듯,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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