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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Aug 14. 2024

이별에 대한 단상

20.08.13.

1.

 내 편이 한 명 더 줄었다. 나는 얼마나 더 많이 잃어야 할까.



2.

 세상의 모든 사람은 딱 한 명의 엄마를 가진다. 그 말은 즉, 딱 한 명의 '무조건적인' 내 편을 가진다는 뜻이다.



3.

 엄마를 잃었다. 2020년 5월에 한 번 그리고 8월에 한 번. 최종적으로 두 번의 이별을 맞이했다. 어떠한 경고도, 작별의 기회도 주지 않은 이별이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이렇게 잃을 수는 없다고 아무리 울어도 하늘은 내 음성을 들어주지 않았다.


 첫 번째 이별, 수많은 사람이 병원을 찾았다. 엄마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 그들 중 몇몇은 이러다 깨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몇몇은 자기 주변 사람이 이러다가 정말로 깨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몇몇은 신에게 기도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기도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하루종일 중환자실 앞에 있는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 희망과 절망의 골짜기 속에서 웅크려 있었다. 그러다 밤 11시가 되면 비로소 일어나 중환자실의 흰 벽에다 머리를 기대고 두 손을 맞붙였다. 흰 벽에다가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코로나 때문에 중환자실 면회가 하루에 2번밖에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정말 중환자여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여서 허용된 2번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루에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그 허용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제발 허용되지 않는 날이 오길 기도했다.


 두 번째 이별, 그날 이후로 신을 믿지 않았다. 이전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저토록 원하고 따른다면 신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사람을, 선하고, 헌신적이기만 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그렇게 빨리 데려갈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한 것이라고는 기여밖에 없는 사람을 잔인하게 배신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2020년 8월 13일, 내 엄마는 영원히 세상을 떠났고, 신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죽었다.



4.

 고등학교 3학년, 수시 합격자 발표가 거의 끝나갈 무렵 교실은 침울함 그 자체였다. 누군가는 합격의 기쁨을 맛봤겠지만 대부분의 불합격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기쁨을 노출시키는 것은 웬만한 깡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했을 터. 울적함이 맴도는 교실에 들어선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얘들아. 많이 힘들고 슬프지? 그런데 말이야. 선생님이 살아보니까 진짜 슬픈 건 그런 게 아니더라고. 선생님이 겪었던 진짜 슬픔이 뭔지 알아?


 우리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선생님의 다음 말씀이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어서 말했다.


선생님이 경험해 보니까 말이야. 진짜 슬픈 건 이별이더라고.


 나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 시절, 그러니까 19살밖에 되지 않았던 청소년에게 이별이라 함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남녀 사이의 이별이었기 때문이다. 결혼도 하고, 아기도 있으신 선생님이 지금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하게 이해한다.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리를 위로한 것이었다. 겨우 입시문제로 속상해하고 있는 우리에게 진짜 슬픔이 무엇인지 알려주며 마음을 다독여주신 것이다. 선생님 말씀이 맞다. 진짜 슬픈 건 불합격이 아니었다.



5.

 나는 오늘도 이별했다. 내 인생에 할당된 이별은 대체 몇 번일까. 앞으로 몇 번의 이별이 더 남았을까. 부디 그 사람이 무조건적인 내 편이 아니었길. 신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나는 다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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