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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Jun 07. 2024

자신했는데, 그래도 부족?

때론 상쾌한 -  노란쌤의 소통 수업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우리 교사들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계획한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어린이날 파티도 해보고, 카네이션도 접고, 편지도 써보고, 효도 쿠폰도 만든다. 


하지만 난 올 5월에도

 ‘일회성 포퍼먼스는 아쉬운데...  이 두 기념일을 조화롭게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난 순간 해냈다. 

이  두 기념일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두 기념일을 ‘소통과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연결한 것이다. 

      

    “ 어린이날이 어떤 날인지 알겠죠?  

그럼, 어린이날을 기념해서 ‘부모님께 부탁해요' 선언문을 만들어볼까? 

초등학교에서 맞이한 첫 어린이날에 드린 부탁을 부모님들께서 꼭 들어주실 수 있도록 

선생님도 말씀드려 볼게.”     


                우리 친구들은 하얀 A4 종이에 모르는 글자를 물어가며 자신의 바람을 적은 후, 

                 각자 선택한 예쁜 종이에 부모님께 드리는 선언문을 정성껏 옮겨 적었다. 

'부드러운 권유'가 아닌 '강한 부탁'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싶어 '선언문'이라는 어휘를 일부러 사용한 것이다.

      

 아빠 심심할 때, 함께 산책해 주세요. 놀아주세요.

 배고플 때, 밥을 빨리 주세요.

 미술 학원 끝나면 집에 있어 주세요.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주세요. 

 더 많이 사랑해 주세요.

 이번 주말만 딱 형아랑 싸우지 마세요.

 화내지 않고 부드럽게(예쁘게) 말해주세요.

 주말에 회사 가지 말고 산책해 주세요.

 아빠, 늦게 들어오지 마세요.

 엄마, 술 먹지 마세요. 

 더러우면 목욕을 깨끗하게 시켜주세요.

밥을 많이 주세요. 왜냐하면 1학년이기 때문에요.

 공부 조금만 시켜주세요.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 주세요.

 엄마, 맨날 화만 내지 말고 제가 심심할 때 웃으면서 놀아주세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안아주세요. 

엄마, 웃으면서 말해주세요. 

 어린이날 행복하게 해 주세요.     



  우리 친구들이 ‘부탁 선언문’을 들고 하교했다는 알림장 글을 남겼더니 

"긴장된다"는 학부모님의 댓글도 달린다.      


  “정말 많이 사랑해주고 있고, 그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그래도 부족했나 봐요. 

써온 거 보고 울컥하더라고요.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찡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 부탁을 꼭 지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세상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8살이지만, 

우리 친구들 마음과 생각을 담은 부탁글을 하나씩 읽다 보니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닌, 소소한 일상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 친구들이 부모님께 바라는 선언문과 함께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서 자녀에게 부탁하는 말씀을 적어올 수 있는 예쁜 종이도 

가방 속에 넣어 하교했다.       


  다음 날, 우리 친구들은 부모님의 부탁이 적힌 종이를 들고 등교했다.   

  

밥 먹을 때는 돌아다니지 않고 얌전히 앉아서 먹어주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자.

집에 와서 가방 정리 부탁해 주세요.

간식은 소파 말고 식탁에서 먹어주세요. 

장난감 가지고 놀고 나서 정리 부탁해요.

실패해도 다시 해보자. 새로운 일에 자꾸 도전해 보자.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주세요.

해야 할 일을 시간 안에 끝내자.

처음 보는 음식도 먹어보자. 

게임 사용 시간 조금만 줄이고,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자.     


  우리는 사랑스런 아들, 딸에게 전해진 부모님의 부탁글을 보며 

어버이날을 맞아 각자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갔다.


    먼저, 카네이션꽃을 단 예쁜 ‘효도수첩’을 만들어 

앞으로 1주일 동안 실천하고 

실천 성실도에 따라 부모님께 ‘효도수첩’에 별표를 받기로 했다.    

  

  1주일 실천 후, 우리는 ‘효도수첩’을 보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저는 매일 실천해서 별표를 3개씩 받았어요. 앞으로는 별표 없이도 할 수 있어요.”

  “저는 3가지 중에서 2가지는 지켰어요. 

1가지는 일주일 동안 더 해 볼래요. 수첩을 한 권 더 만들어야겠어요.”     


  오랜 시간 막연하게 그려왔던 

‘따뜻한 공감 & 다정한 소통’ 이 있는 ‘어린이날 & 어버이날’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 수업을 디자인할 수 있어서 기쁘다. 


   자녀와 부모가 

어떻게 더 깊게, 더 가깝게, 더 깨끗하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를 

수업 속에 담기 위해 나는 오늘도 꼬물꼬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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