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 성인이 된 1년 내내 지하철역의 퀘퀘한 냄새에 달큰하고 비릿한 오뎅국물이 합쳐진 냄새를 제일 많이 맡았다. 엄마인 사장님과 자주 싸웠고, 그럼에도 일은 잘했고, 동시에 예쁘지 않았다. 자다가도 오뎅 하나 드릴까요, 잠꼬대를 했고 내 고집으로 다시 하게 된 수능 공부는 녹록치 않았다. 교대, 문이과, 영어, 지구과학, 혹은 그 외의 경계에서 꼭 그만큼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었기에.
가게 문을 닫던 그 10월, 밤이 되자 맨얼굴에 대충 눌러쓴 모자로 머리는 눌려있었고 어서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고 생각하며 언제나처럼 쓰레기를 버리러 지하철 역을 나왔다. 바로 앞 먹자골목에는 삼삼오오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가게들에서 내놓은 쓰레기가 내 허리께까지 쌓여있었다. 술에 취한 청춘들의 웃음소리가 하얀 입김처럼 보였다 사라졌다. 검정 코트를 입은 내 또래의 여자아이는 비틀거리며 어떤 남자의 품에 안겨있었다. 수능이 한 달 남았었다.
20살이라는 내 나이가 지나치게 싱그럽다고 느꼈다. 매일 손님이 두고 간 오뎅꼬치를 치우고 상을 닦고, 설거지를 하며 조바심을 느꼈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가게에서 일할 사람은 나 뿐이었다. 어리고 가장 좋은 나이라는 스무 살이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이런 게 제일 좋은 나이라면 그다지 삶에 기대할 것 없겠다고 생각하며 언제나처럼 건조하게 행주를 짜 널었다.
시험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고, 우리 가게는 1년을 버티다 문을 닫았다. 가게를 도와줬다기에도, 공부를 했다기에도 애매한 1년이 흘렀다.
행복한 날이 올 거야.
과연 그럴까? 지금 당장도 이렇게 걱정이 많은데.
별 생각 없이 놀러가 볼까.
비싸서 할 수 있는 게 없네. 아. 뭐해서 먹고 사나.
인생은 절망과 불행을 이어붙인 기찻길을 따라 하염없이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스물의 빛은 그저 잔인하게 앳된 얼굴에 그늘을 더할 뿐이었다.
울다 지쳐서,
연락할 사람이 없어서 컴퓨터를 켰다.
누가 보면 안 될 글들이 쌓여갔다.
불행했으니 그만큼 행복해지리라는 법칙은 없었고 그런 현실이 익숙했다.
결말은 없었고 그저 달은 뜨고 기울며 나는 또 습관처럼 시간을 계산했다.
생각.
생각.
질려버릴 정도로 또 생각.
내 생각 좀 들어봐봐. 나 정말 불행하지?
늘 달을 봤다. 별 이유가 있진 않았다. 엄마와 함께 가게 문을 닫고 무거운 몸을 작은 차에 실어 집으로 이동할 때 더 말할 힘도 없이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 밝진 않았다. 뿌연 신도시의 하늘에, 건물에 가려질듯 말듯한 모습을 보며 음력 며칠이겠거니, 언제 떴으니 언제 지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의 우울은 필요 이상으로 나에게 친절했고 우린 주기적으로 같이 수렁에 빠졌다. 세상은 날 사랑하기 버거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