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그림 재시작하기

눈으로 소통하는 언어

by 피연

뜬금없다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영역이 없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림이 그렇다. 그림은 재능이 결정한다는 운명론을 믿었다. 잘 그린 그림을 보면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도, 넘볼 수조차 없는 영역이기에 질투조차 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완벽한 비교군인 2살 위의 오빠가 그림을 잘 그렸기에 그림은 내 것이 아니라고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박힌 것 같다.


대학을 휴학한 24살, 계획한 일들이 틀어져서 필요치 않은 시간 여유가 생긴 지난한 날들이 있었다. 늘어지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는 지나치게 밝은 햇빛 앞에서 내 존재가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을 기력은 없는데, 어딜 떠날만한 여유도 없었다.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구독하던 그림 유튜버가 있었고 우울을 다룬 영상을 몇 번이고 들었다. 자연스레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즈음 글과 멀어지고 있었다. 뭘 쓰는지, 왜 쓰는지, 애초에 잘 쓸 수는 있는 건지. 아무도 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에 시달려 제자리걸음이었다.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 글들이 징그러웠고 쓸 수 있는 말들은 모두 동어반복이었다. 과한 자기 연민에 나조차도 정이 떨어졌으니. 텅 빈 흰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다 꺼버리길 반복했다.


어느 날이었다. 문득 다이소에 가서 싸구려 종합장을 하나 샀다. 집에 돌아와서는 커터칼로 연필을 깎고 첫 번째 장을 펼쳤다. 그때까지도 내가 뭘 하는 건지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림이라니?' 민망한 헛웃음이 번졌다. 길 가다 찍은 오리 사진을 따라 그렸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뭇잎도 그리고 좋아했던 만화 캐릭터도 그렸다. 삐뚤빼뚤 그림 기초가 하나도 없지만 퍽 마음에 들었다.


그림도 하나의 언어라고 했다. 여태 붙잡고 씨름하던 애증의 글쓰기와 다르게 그림은 직관적이었다. 머릿속에 애벌레가 기어 다니듯 우울한 생각이 드글드글 날 괴롭힐 때 그저 눈앞에 있는 그대로를 보고 어떻게든 따라 그리는 것은 생각에 침잠하지 않고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집중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예전엔 그림을 그렸다. 못 그리는 걸 알았지만 마음에 드는 노트에 낙서를 했고 중학생 때는 친구들의 웃긴 일화를 기록 삼아 만화를 그려서 돌려봤다. '난 못해'라는 생각이 늘 나를 사로잡고 있어 더 발전하지 못했을 뿐 나도 분명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


그림쟁이들이 늘 하는 말이 다른 영역보다도 그림은 노력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수준의 화가가 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감각과 재능이 필요하겠지만 일반인이 원하는 수준, 내가 원하는 걸 일정 수준으로 그려내는 정도까지는 연습만 제대로 한다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믿어지진 않았지만 주변에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 그림책들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쯤 되면 그림은 재능이라서 나는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고집인가?


6개월간 매일 1시간 이상씩 그림을 그렸다. 당연히 매일 했으니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그림도 심지어 노력하면 는다는 게 뜻밖이었다. 발전이 시각적으로 보이니 뿌듯하고 의욕이 샘솟았다. 더 좋은 건, 그리던 당시에 나의 감정이 다시 기억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기 귀찮은 날은 선조차 귀찮아 보였다. 많이 슬픈 날엔 선이 진하다가도 뭉근했다.


눈과 손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귀는 자유로웠다. 음악을 마음껏 듣거나, 라디오를 틀어놓거나 누군가와 긴 전화통화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 종종 랜덤 뽑기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다 그린 그림을 매일 들여다보며


오늘은 지우개 없이 끝까지 잘 그렸네.

오늘은 눈이 깔끔하다.

맨날 코만 그리면 망했는데 오늘 건 꽤 예쁘다.

입술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라인을 따지 말고 은근하게 표현해야 명란젓처럼 안되는구나.


기대가 없었기에 사소한 발전에도 한없이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림을 친구에게 보내주며 '나 휴학하더니 별 걸 다 한다 그렇지?' 하니 예상치 못하게도 칭찬을 받았다. 기초 없이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며 내 그림 느낌이 좋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엔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이젠 공통의 관심사가 된 그것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내가 보는 걸 다시 그려내는 건 사진 찍는 것과 비슷하다. 지하철을 타러 가며 앞사람의 바짓자락이 움직이는 모양 같은 것이 보였다. 조명에 따라 생기는 예상치 못한 색을 포착할 때면 성능 좋은 렌즈로 갈아 낀 듯한 시원함이 있었다.


그림만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즈음 다른 일로 바빠져서 그림을 중단했다. 아니, 사실 그즈음 조울증 판정을 받았다. 병 증상을 온전히 다 보고 견뎌낸 가족들은 내 모습이 트라우마처럼 되었고, 아직 증상이 있을 즈음 그림을 자랑하러 종합장을 들고 가 보여주니 매서운 말만 듣게 되었다. 나는 말없이 종합장을 덮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림을 아예 잊은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리려고 앉으면 퇴보한 그림만 그려졌을 뿐이었다. 관찰하고 싶은 게 없을 뿐이었다.


갑자기 종합장을 샀던 그 어느 날처럼, 이대로 먼지 쌓인 연필 묶음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선이 모여 면이 되니까, 답답해도 이게 제일 빠른 길 같아서. 피연의 연은 '벼루 연'이다. 매일 벼루를 갈듯이 선 연습을 하려고 결심했다.


두꺼운 연습장에 연필을 깎아서 가로선, 세로선, 대각선, 곡선 긋기를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제일 귀찮은 연습이었지만 기초란 건 늘 제일 중요한 본질에 닿는 일이니. 매일 10분이라도 좋다고 스스로와 약속하고 휴대폰 위젯에 D+1을 설정했다. 그림과 나는 다시 오늘부터 1일이다.



21.08 첫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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