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이야기(12. 추수감사절 이야기(신문지 뭉치))

12. 추수감사절 이야기(신문지 뭉치)-

by 홍반장

추수감사절은 기세에게는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기간이다.

제발 이번에는

제발 무대 위에 올라가 노래하거나, 연극 등을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세는 이번에는 교회 사람들이 많아져서인지,

시간대별로 또래들만 모여서 행사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래서 또래들끼리 모여서 하는

행사가 어떤 건지에 대해 들리는 아이들 입방아로 소란스럽다.



어머니가 교회 선생님이신 아이가

선물 나누어 갖기 같은 거 하면 좋겠다고 한마디 거든다.

선생님은 결정하기 어려우셨던지

추수감사절 행사에 관한 아이들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웃으시며 들으신다.



한참을 고심하신듯한 선생님은 모여있는 아이들에게

간단한 준비물을 설명해 주신다.

준비물은 친구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하나씩 사 오라는 것이다.



골목길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나 누나의 손을 잡고 학교 앞 문방구로 향한다.

연필, 공책, 책받침, 필통 등을 몇 가지 넣고, 반짝이는 포장지로 포장을 한다.

기세가 좋아하는 루팡, 셜록 홈스 추리소설이나 플라모델을 사는 아이도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친구에게 줄 선물을 하나씩 사 가야 된다는 기세 말에

엄마는 고민할 것도 없이 빨간 철문을 나서신다.

뽀얀 먼지가 툭툭 떨어지는 수건을 머리에 둘러 맨 엄마의 손을 잡고,

이발소 옆 메리야스 가게로 쫓아간다.



엄마는 한동안 흰색 팬티와 러닝을 보시면서

2~3개씩을 주인아주머니에게 건넨다.

아주머니는 고깃간에서 고기 싸듯이 신문지로 둘둘 말고,

노끈으로 십자 형태로 묶은 뭉치를 건네주시며

“애들에게는 이게 최고야!”라고 하신다.



일요일 오후 늦게

3~40명 정도 모여있는 동네 또래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다시 설명을 자세히 해주신다.

“너희들이 가져온 선물을 상자에 넣고,

한 명에 하나씩 돌아가면서 가지고 가는 거야!”



선물상자는 두 개였고,

왼쪽 상자엔 남자, 오른쪽에는 여자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각각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선물을 담았다.

기세는 쑥스러운지 신문지 뭉치를 얼른 남자 상자에 던져 넣고,

자기 자리에 가서 앉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선물 꺼낼 때에는 반대쪽 상자에서 선물을 꺼내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때,

기세는 한동안 멍해졌다.



호기심 많고 뚱뚱한 아이가 손들고 먼저 고르겠다고 아우성이다.

선물을 고른 남자아이들은

선물을 고르느라 신중한 얼굴을 하는 아이들 뒤로 어떤 것이 나올까 하고

의자에 앉아 뜯어보고,

주위 아이들과 좋다 안 좋다 여러 말이 많다.

순서가 된 기세는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든다.

선물을 뜯어보느라 정신없는 아이들 사이에

기세는 무엇을 꺼내 손에 들었는지 관심은 뒷전이다.

지금 기세의 마음은 어떤 여자아이가 창피한 내 선물을 고를까 하는 생각과

뜯어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가 더욱 걱정이다.


여자아이들 순서가 되었다.

여자아이 한 명 한 명마다 꺼내는 선물 뭉치가 멀리서도 하나하나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여자아이들은 다들 포장지가 이쁜 걸 고르느라 뒤적이며 집어 든다.

상자 위로 쉽사리 신문지 뭉치는 보이지 않는다.


책방 집 깍쟁이 주은이가 앞에 나선다.

남자아이들에게 이뻐서인지 인기는 많지만,

조용하고 잘 웃지 않는 아이다.



주은은 상자 앞에 서서 여러 선물을 둘러보더니

하고많은 선물 중에 하필 신문지 뭉치를 집는 것이다.

기세 얼굴은 작년 추수감사절 호박 사건 때보다 더욱 화끈거린다.

주은이가 노끈으로 싼 신문지 뭉치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이상하리만치 미소를 활짝 띠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기세에게는 너무나 이상했다.

자기 자리에 앉은 주은이는 한참을 누굴 찾는듯 두리번거린다.

기세는 순간 어디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친구 옆으로 고개를 숨긴다.



주은이는 무릎 위에 올려진 뭉치의 잘 안 풀리는 노끈을 무척 소중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풀어 펼친다.

어렵게 펼쳐진 신문지 위에는 예상했던 대로,

흰색 팬티와 메리야스 2~3개가 창피한 줄 모르고 차곡차곡 쌓여있다.

기세는 고개를 숙이고,

곁눈질로 주은이 앉아있는 쪽을 살핀다.



어둑어둑해져 가는 집으로 향하는 아카시아 골목길.

그렇게 잘 안 웃고 깍쟁이던 주은이는

여자아이들과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웃고 떠들며 앞서 걸어간다.



주은이의 두 손 모은 품 안엔 신문지 뭉치가 소중히 안겨 있다.




기세는 아버지한테 끌려서 가기 싫은 이발소 갈 때도

항상 이발소 옆 메리야스 가게 아주머니에게 구십도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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