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추수감사절 이야기(늙은 호박)-
요즘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에 열심히 가는 기세.
곡식을 수확한 후 하나님께 첫 열매를 올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을 기리는 날인 추수감사절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 당일에 있는 행사에는 장기 자랑이나 연극, 합창 등을 보통 하곤 한다.
반별로 장기 자랑를 준비하거나,
연극, 노래연습 등이 있는 이유로 성경공부하는 반별로 지하방은 북적인다.
교회 파하고 나서도 우리 반이 있는 방 주변, 옆방 동태 파악도 바쁘다.
어떤 반은 가면을 만들기도 하고,
수염이나 모자, 종이로 된 장식물, 지팡이 등 필요한 도구를 만드느라 부산을 떤다.
하지만 기세네 반 아이들은
어떤 말씀도 안 하시고 웃고 있는 선생님 얼굴만 멀뚱멀뚱 보고 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말씀 외에는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다.
다음 주면 결전의 날이다.
선생님이신 친구 어머니는 아이들을 모으고,
“우리 반은 사랑이라는 주제로 연극을 하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준비도 하나도 안 했는데 어떻게 하나요?”
다른 반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인지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껌벅껌벅인다.
선생님은 책상 옆에 미리 준비해 놓으신 듯한 장바구니를 꺼내신다.
먹음직한 사과, 배, 감, 소풍 때나 잘 사는 아이들이나 먹을 수 있는 바나나까지
골고루 꺼내신다.
첫째 아이에게
“너는 이 사과를 들고 저는 사과입니다. 맛있는 사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을 하고, 다음 너는
“저는 배입니다. 이 먹음직스러운 배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음은 안 물어봐도 알만한 대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가 끝나고 모든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합창을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다.
합창은 ‘예수님의 사랑 신비하고 놀라워!’로 시작하는 찬송이다.
모든 아이들이 쉬운 대사와 간단한 연습을 마치고 돌아간다.
순서가 지나갈 때마다 남아있는 과일이 하나씩 하나씩 줄어드는 걸 보고
맨 마지막에 남은 기세는
“저는요?”
한참을 망설이던 선생님은
기세 앞에 힘들게 크고 누런 무거운 늙은 호박을 책상에 올리시는 것이다.
컥 안 봐도 상상이 갔다.
왜 하필 이런 호박을 주시는지 원망스러웠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이 대사를 하고 맨 마지막에 기세의 순서라는 말씀에 더더욱 긴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너의 대사는
“저는 늙은 호박입니다. 저는 이렇게 늙고 추하게 보여도 건강에 좋은 음식이며,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이라 하신다.
기세는 돌아오는 길 내내 대사를 생각하면 뻘겋게 상기되는 얼굴을 양손으로 비벼댄다.
정말로 죽기 보다 싫은 일요일이 왔다.
교회 강당 뒤편 준비실은
반별로 순서를 기다리며 대사를 외우느라 소란스럽다.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세에게 수박을 쌀 때 쓰는 망에서 저주스러운 호박을 꺼내어 기세에게 전해준다.
기세는 왜 하필 내가 이런 역할을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호박은 왜 이리 크고 무거운지,
다들 이쁘고 맛있게 보이는 과일에 비해
뒤로 숨기고 싶어도 숨기지 못하는 늙은 호박의 크기에 연신 한숨이 난다.
드디어 우리 반의 순서가 오고,
차례대로 아이들이 무대 위로 올라간다.
왜 이리 시간이 더디게 가는 건지,
호박을 떠받친 양손은 어디서 이 많은 땀이 흘러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무거운 호박을 한쪽 손과 무릎으로 받치고,
번갈아 한쪽 손을 바지 뒤에 땀을 훔쳐내기 바쁘다.
준비실에서 한 명씩 빠져나가고,
텅 비어 가는 준비실은 선생님과 기세가 무대 쪽을 마주하고 있다.
드디어 순서가 왔다.
뒤에서 어깨를 두드려 주시는 선생님에 이끌려 마지못해 걸음을 뗀다.
왜 이리 계단 하나하나가 가파른지,
숨이 가쁘고 계단이 하얗다.
오를 때마다 무대 위 우리 반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과
객석 쪽에 조금씩 보이는 동네 사람들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세는 무대에 올라가자,
바로 앞사람들은 뿌옇게 하나도 안 보인다.
유독 눈에 띄는 건 맨 뒤에 서있는 사람들 몇 명만 뚜렷이 들어온다.
앞에서 나온 아이들의 대사를 반복적으로 들어서인지 기세가 대사를 하기도 전에
“하하, 헤헤, 호호” 여러 가지 웃음소리가 나오며 강당 내에는 벌써 시장 바닥이다.
검붉은 얼굴을 한 사람은 기세뿐일 것이다.
준비된 대사를 제대로 했는지 못했는지, 기세는 기억이 없다.
반 아이들은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
“예수님의 사랑 신비하고 놀라워~”
기세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 보는 거 같아서인지
민망한 채 입만 삐쭉거리며 시늉만 한다.
다음 날부터 기세에게는 악몽 같은 하루가 시작이었다.
골목길 아이들은 기세를 보면 손가락질과 호박이라는 별명과 더불어
“예수님의 사랑 신비하고 놀라워~”라며 찬송 부르기 일쑤였다.
동네 사람들은 기세만 보면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기세는 동네에서 창피한 인기 명사가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 신비하고 놀라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