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문장의 시작

by hyncollection


초등학교 졸업식, 내 장래희망 칸은 전교생 유일하게 작가라는 직업으로 채워졌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늘 작가라는 꿈을 품고 살아갔다. 초6, 홈스쿨링을 선택했던 이유 또한 어쩌면 그중 하나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공교육과 사교육, 그리고 진정한 학습에 대한 의구심과 질문을 늘 던져왔던 나는 학교 밖에서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펜데믹 이후, 일상은 무너졌고 학업에 과도한 힘을 쏟으며 서서히 나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하루 식사시간과 수면시간을 극도로 줄인 생활을 반년가량 지속해왔다. 열정과는 다르게 내게 돌아오는 것은 건강의 악신호였고 작은 신호들을 무시한 채 달려온 결과, 몸과 마음은 모두 무너져 있었다.


3번의 수능을 치른 후, 시험장에서 나오자마자 든 생각은 더 이상 못하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내 아픔을 알리지 않은 채 스스로 해결하려 했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이였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쉼을 선언했다.


쉼의 시간 동안 내게 가장 간절했던 것은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건강한 증량을 위해 PT를 끊었고, 좋아했던 해금을 다시 배우고 싶어 1:1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냥 그렇게 쉬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긴 시간 동안 몰입하던 것을 끊고 나니 마음속의 큰 구멍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실은 원래 있었지만 애써 무시해 오던 그 구멍이 주는 공허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구멍을 메꾸기 위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린 거지?’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을 때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대학, 취업, 결혼, 가정, 양육, 노후. 내가 스스로 정한 기억도 없는 루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놓여 있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학교 밖을 선택한 내가 어쩌다, 그리고 언제부터 사회에서 정한 엘리트 루트를 밟아야 한다고, 그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제서야 나는 내 목표가 흐려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치 경주에서 안대를 쓰고 정신없이 달리다 안대를 벗으니 경쟁 상대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허허벌판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늘 느껴왔지만 늘 마음 한 켠에 묻어두었던 내 마음속 큰 구멍, 삶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이질감 드는 나의 모습. 모두 내가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내가 허락한 쉼의 시간 동안 나를 찾기로 다짐했다. 진부한 용어가 되어가고 있는 '나 다움', '나답게 사는 삶'.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그 용어 자체와는 다르게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정의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이 든다. 게다가, 나를 진정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답은 없을 수 있을 지언정, 사람마다 각기 다른 해답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생각했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였지만 수없이 울고 넘어지고 헤메이며 나만의 해답을 찾아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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