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문학동네)
한밤중에 창문이 덜컹거려 잠이 깼다.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거센 바람이 불면 안방 창문까지 속절없이 흔들린다. 창밖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색이 바랜 나뭇잎들이 날아다녔다. 삶은 갑작스런 바람처럼 예측할 수 없고, 우리가 걷는 길의 어느 구석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정체모를 불안과 공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편혜영의 소설은 우리의 그러한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를 건드린다. 대놓고 호러나 스릴러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편 하나를 다 읽고 나면 어쩐지 몸에 한기가 드는 것만 같고 조금 떨리는 것도 같다. 마치 어느 밤, 잠에서 깨어 거센 바람을 마주한 것처럼.
표제작인 「어쩌면 스무 번」에서 주인공 부부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하는데, 평화로울 줄 알았던 시골 마을의 전원주택에는 자꾸만 원치 않는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이를테면 옥황상제 이야기를 하는 전도사라든지 불안감을 조성해서 상품을 홍보하는 보안업체 직원 같은 사람들 말이다. 처음엔 그러한 외부 상황 자체가 공포스럽게 느껴지지만, 끝까지 읽다보면 정작 공포의 원인은 우리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좋은 소설들이 그러하듯, 편혜영의 『어쩌면 스무 번』 역시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덤덤해 보이는 서술 속에는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이 있고, 우리는 어느새 그 안으로 빠져들게 된다.
아침이 되자 바람은 잔잔해졌고, 평온하게 햇살이 비춘다. 한밤중의 거센 바람에 떨어져버린 나뭇잎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비록 그것이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불안과 공포라 할지라도.
* 2023년 4월 부산 연제구청 소식지에 수록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합니다.
책 속에서
- 나는 물고기가 강을 타고 흘러갔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게 틀렸다는 걸 알았고 제대로 글자를 읽지 못해 어머니를 실망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미소를 짓고는 “그랬구나. 물고기가 왜 그랬어?”하고 물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강을 좋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따라 웃었다.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며, 흘러가는 건 다 좋은 거라고, 좋은 건 다 흘러간다고 말했다. (19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