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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아 Oct 20. 2024

우물 속 빅뱅 (5화)

가짜 반딧불이

공장 사람들은 유안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모뻘 되는 중년 여성들이었는데, 신참 주제에 입바른 소리만 해댄다고, 우리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겠냐고, 바빠 죽겠는데 어느 세월에 장갑을 끼었다 벗었다 세척했다 그러느냐고, 유안을 대놓고 닦아세웠다. 그래도 유안은 끝까지 주눅이 들지 않았다. 특히 미선 이모와는 매번 언성을 높여 싸웠다.

이모, 사람이 먹는 음식이잖아요. 가족이 먹는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 가족은 빵 안 먹는다.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나는 집에서 음식할 때도 맨손으로 한다. 장갑 끼려면 너나 껴. 나는 빨리 작업 끝내고 제 시간에 퇴근하고 월급만 따박따박 들어오면 만족한다고.

이모, 그게 사는 거예요?

그쯤 되면 미선 이모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유안에게 욕을 퍼부었고, 옆에 있던 다른 이모들은 미선 이모를 달래고 유안을 나무라며 둘을 떼어놓았다.

그런 날에 나는 유안을 데리고 갈대가 무성한 습지 공원에 갔다. 바람의 강도에 따라 갈대는 매번 다른 소리를 냈다. 나무 데크로 조성해 놓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정원이 나왔고 그리 크지 않은 나무들 사이로 초록빛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진짜 반딧불이는 아니었고 조명으로 초록색 점 같은 불빛을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만들어둔 것이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유안은 반딧불이를 잡겠다고 어린애처럼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잡았다, 하고 소리치면서 내게 펴 보이는 유안의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무척 슬픈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들려오던 개의 비명 소리를 떠올렸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때쯤 버스는 도착하겠지. 우리는 또다시 거기에 올라타고 낯선 남자들은 습관처럼 추파를 던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잠이 들고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돌고 돈다.

그거 사실 나 스스로한테 하는 말이야.

유안이 가짜 반딧불이 잡기를 포기하고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무슨 말?

미선 이모한테 했던 말. 그게 사는 거냐고.

나는 유안의 낡은 옷 위로 이리저리 맴도는 초록 불빛을 바라보았다. 이게 진짜라면 참 좋을 텐데. 그러면 내 두 손으로 살며시 잡아서 너의 작은 주머니에 넣어줄 건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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