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우리는
반죽기 안에서 밀가루 반죽이 빙빙 돌면서 뒤섞일 때 말야. 가끔 먼지처럼 작은 초파리가 들어갈 때가 있거든.
그게 보여?
금세 안 보이게 되지. 반죽 속에 바로 파묻혀서 뒤섞여 버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그래. 나는 기계를 멈출 수도 없고 초파리를 꺼낼 수도 없어. 그게 사는 걸까.
그건….
우린 초파리일까.
…유안아.
어쩌면 이미 반죽일까.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었는데 어떤 말도 그 애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 유안이 갑자기 뛰길래 나도 같이 뛰었다. 숨이 차더라도 옆에서 속도를 맞추어 같이 뛰는 것만이 그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가짜 반딧불이들이 사라지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조명 설치물들이 나타났다. 요란한 조명들을 모두 다 지날 때까지 우리는 뛰었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노랫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관객은 하나도 없는데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크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늙은 가수가 그곳에 있었다. 그는 거친 목소리로 유행이 지난 사랑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노래 가사는 지긋지긋한 신파였지만 묘하게도 그의 모습은 봉쇄수도원에서 홀로 고행하는 수도자처럼 보였다. 어떤 무엇도 그의 노래를 방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앉아 지나간 사랑 노래를 들었다. 적어도 그 순간 우리는 초파리도 반죽도 아니라고, 유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