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야 되겠네
유난히 길던 여름의 어느 날, 미선 이모는 공장일을 그만두었다. 자의는 아니었다. 밀가루 반죽을 분할기에 옮기다가 스위치가 잘못 눌러졌는지 기계가 갑자기 돌아갔고, 그로 인해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다. 유안과 나는 오후 출근이었기 때문에 아침에 벌어진 그 사고 현장을 보지는 못했다. 우리가 출근했을 때 공장은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낯선 사람들이 카메라와 서류 같은 것을 들고서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사고가 있었던 분할기에는 출입 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테이프가 빙 둘러 붙여져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우리가 물을 필요는 없었다. 현장을 목격한 이모들이 우리의 출근을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어서 너무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상황을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차마 알고 싶지 않은 내용까지도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안은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매일 언성을 높여 싸우던 사이였다는 것은 모두 잊은 듯했다. 나도 미선 이모 일이 속상하고 마음 아팠지만 유안을 진정시키느라 다른 걱정은 할 겨를이 없었다.
얘, 너무 그럴 것 없다.
미선 이모와 주로 함께 작업하던 연희 이모가 유안에게 말했다.
이야기 들어 보니까 이거 완전 로또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전히 넋을 놓은 채 울고 있는 유안 대신에 자경 이모가 물었다.
아니, 내가 한 다리 건너 아는 변호사가 있는데.
변호사를 다 알아요?
직접 아는 건 아니고. 우리 사촌 언니 고등학교 동창인데 산재 전문 변호사거든. 내가 아까 언니한테 전화해서 미선이 이야길 했더니, 언니가 동창회 때 그 친구한테 들었다면서 말해주더라고.
그게 뭔데요?
이게 산재 처리되니까 산재 급여 나오지, 그리고 회사에서도 따로 보상금이 나올 건데 그거 다 합치면 억대라잖아.
억대요?
우리가 여기서 평생 일해도 그 돈 못 모으지 않겠어?
못 모으죠.
솔직히, 사는 데 엄청 지장 생기는 장애도 아니고 겨우 손가락 한 마디잖아. 자기 같으면 손가락 한 마디를 선택할래, 억대 보상금을 선택할래?
그야….
그러니까 로또라는 거야.
그러자 유안이 갑자기 으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연희 이모를 노려봤다.
이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겨우 손가락 한 마디라뇨. 사람이 다쳤잖아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이왕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지.
그걸 왜 이모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자기 손가락도 아니면서!
유안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연희 이모를 자경 이모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유안은 다시 소리내어 울었다. 나는 그런 유안을 어떻게 달래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 그 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바싹 마른 등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내려 주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어서 한 손으로 유안의 어깨만 살며시 잡았다.
고마워.
유안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대체 이게 사는 건가, 우리는 왜 이렇게 꾸역꾸역 사나 싶었는데.
유안이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갰다.
그래도 살아야 되겠네.
∞
그래도 살아야 되겠네, 울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리던 그 말이 자꾸 맴돈다. 내 손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는 무언가가 유안에게 남아 있다면 좋겠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