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으로만 생각해오던 말
공장이 기울고 있어.
유안이 그 말을 처음 했을 때 나는 공장 경영상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유안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실제로 공장 건물이 기울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피사의 사탑도 아니고. 저 멀쩡한 건물이 기운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라고.
여길 봐.
유안은 나를 공장 뒤편으로 데리고 가더니 건물 모서리 부분에 거미줄 모양으로 생긴 균열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런 거 건물마다 다 있지 않아?
점점 늘어나고 있어. 그리고 저쪽 창은 문틀이 뒤틀려서 잘 열리지도 않아. 이게 다 붕괴 징조라고.
나는 공장의 높은 담벼락을 끝까지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담벼락 아래로 드리워진 깊은 그늘을 내려다 보았다. 유안의 말을 듣고 보니 건물이 조금 기운 것 같기도 하고 그늘이 더 길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가까이서는 한눈에 다 담기도 어려운 그 커다란 건물이 미세하게 기울고 있는지 아닌지 내가 정확히 알 도리는 없었다.
누구한테 말해야 하지?
누구한테 말해도 신경 안 쓸 걸.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점이 와서 결국 무너져 내릴 때까지 기계는 계속 돌아가는 거야. 우리는 그때까지 기계의 속도에 맞춰 일할 뿐이고.
그러다 다같이 붕괴하자고?
아니면 미리 탈출하든가.
우리만 탈출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비겁한가.
유안의 표정이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생각해오던 말을 불쑥 해버렸다. 우리 같이 살까, 하고. 그러자 유안의 눈에 고여있던 슬픔이 단숨에 걷혔다.
정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언제든.
그렇게 해서 우리는 내 원룸의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출퇴근이 좀 더 편한 집을 구해 함께 살기로 약속을 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퇴근 후면 유안이 늘 내 집에 와서 버스 막차 시간까지 있다 가곤 했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였다. 우리가 매일 헤어질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며 서로를 안은 채 깊이 잠들어도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그 애가 가족이라는 지옥을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 지옥을 스스로 탈출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유안은 말만 세게 할 뿐 실은 마음 약한 울보 어린애였다. 우리끼리 공장을 탈출하자는 말 역시 진심이 아니었음을 나는 안다. 유안은 설령 건물이 붕괴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해도 혼자 도망칠 사람이 못 되었다. 공장 안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을까봐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니고 울고 소리치다가 결국 무너지는 콘크리트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겪어낼 아이였다. 설령 그 안에 악당들만 남아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그런 유안을 오래된 지옥으로부터 잠시나마 꺼내오고 싶었다. 그게 몇 년이 되었든 몇 달이 되었든, 그 애가 평생 이 악물고 견뎌온 삶이 나로 인해 다만 얼마간은 견디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어서 이 겨울이 지나가고 유안과 함께 지낼 집을 구하러 다니길 바랐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