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을까. 이제 와서 그런 가정이 의미가 있나. 그보다,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거대한 기계 속에 빠진 초파리는 금세 밀가루 반죽 속에 파묻힌 채 형체도 찾을 수 없이 뒤섞여 버린다는데. 초파리… 반죽… 초파리… 반죽…. 유안의 목소리가 자꾸 맴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몸이 지상에서 살짝 떠 있는 채로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던 그 순간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흐려진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싶다.
∞
아, 하필 날짜가.
유안이 볼멘소리를 한 것은 갑자기 생긴 야근 일정 때문이었다. 그날은 우리가 함께 불꽃 축제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고, 날씨가 꽤 추울 거라고 해서 방한용품까지 두 개씩 미리 주문해둔 터였다. 유안은 다른 사람과 야근 일정을 바꿔보려고 애썼으나 잘 되지 않았다.
차라리 나랑 바꾸고 너라도 혼자 갔다 올래?
그건 아무 의미가 없지. 너랑 가려고 했던 건데.
그래도. 꼭 보고 싶어 했잖아.
어쩔 수 없지, 뭐. 내년에 또 하겠지.
나는 우리에게 내년 겨울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그리고 지역의 전통과 관계없이 일시적으로 개최하는 축제라는 것이 언제고 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하다가 혼자서라도 그 축제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커플템으로 구입한 방한용품을 단단히 착용하고 가야겠다고. 가서 불꽃이 터지는 장면을 동영상에 담고 커플 모자와 목도리가 보이도록 셀카를 찍어서 유안에게 보내주어야지, 하고.
그곳에 간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야근조 이모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는 유안에게 내일 보자고 손을 흔들고 부랴부랴 공장을 빠져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앉아 목도리를 하고 모자를 썼다. 버스는 생각보다 금방 왔고, 쓸데없이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도 없었다. 축제 장소인 습지 공원으로 가는 내내 나는 유안을 생각했다.
공원에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 있다가 온 것인가 싶을 정도로 공원 전체가 인파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조금 덜 붐비는 곳, 그러니까 중심 행사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구경을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유안에게 보여줄 동영상을 실감나게 찍으려면 그 인파 속에 있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 사람들 틈을 비집고 중심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