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아 Oct 20. 2024

우물 속 빅뱅 (10화)

너무 늦지는 않게

식전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들이 카운트다운을 다 함께 외치자 축제가 시작되었다. 검디검은 하늘에 눈부신 불꽃이 펑펑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처음에 유안이 불꽃 축제에 가자고 했을 때 인공적인 불빛을 떠올리며 그래, 그러자, 하고 별 감흥 없이 대답했었는데, 실은 인공이든 뭐든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금세 사라질 빛이었으므로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밀착된 타인들의 존재를 실감하며 휴대폰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발그레해진 볼 옆에 손가락 하트를 하고 셀카를 찍어 유안에게 보낸 다음 계속해서 수많은 모양으로 터졌다가 사라지는 불꽃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년 겨울의 축제를 기약하기보다는, 그 순간 내가 유안을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추상화된 언어 한 마디가 아니라, 내 모든 행동과 표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의 아우성.

다른 잘못은 없었다. 우리는 그저 눈부시게 빛나는 불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뿐. 그 아름다움에 취해, 이토록 엉망진창인 세계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라는 냉혹한 사실을 잠시 망각했을 뿐.

온몸의 힘을 잃고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리던 그 순간, 왜 갑자기 호숫가의 풍경이 떠올랐을까. 단풍이 떨어지기 직전의 늦가을, 유안과 걸었던 그 호숫가의 풍경 말이다. 우리는 그곳에 좀 늦게 도착했다. 호수를 둘러싼 산책길은 개방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우리는 폐쇄 시간을 겨우 30분 남겨두고 입구를 통과했다. 늦어버린 가을, 늦어버린 입장 시간. 그렇지만 너무 늦은 것은 아니었다. 단 하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이 오묘한 색채로 물든 단풍은 나뭇가지에서 아직 떨어지지 않은 채 우리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 빛나는 풍경 속에서 함께 숨을 쉬며 존재했다. 그 시간이 겨우 30분에 불과하다고 해서 조급해 한다거나 대충 흘려보내지 않을 자신이 우리에겐 있었다. 30분은 때로 30년보다 더 강렬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았다. 산책로를 반쯤 걸었을 때 안내 방송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개방 시간이 곧 종료될 예정이니 이용객들은 서둘러 밖으로 나와달라는 말이었다. 사라질 가을 풍경이 마냥 아쉬웠으므로 관리인이 점검을 끝내고 갈 때까지 유안과 함께 커다란 나무 뒤에 야생동물처럼 숨어 있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고 시간에 맞춰 그곳을 나왔다. 그건 산책로의 관리 규정을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게 그곳에 도착했던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었다.


이전 09화 우물 속 빅뱅 (9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