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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오늘

황인찬 시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by 서정아

끝이 보이는 바다는 처음이야

너는 말했지


한국의 바다에는 끝이 있다 세계의 모든 바다에도 끝이 있고, 바다 건너 어딘가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그런 이야기에도 끝이 있고


바다에 끝이 없다고 누가 했는지


파도에는 끝이 있고, 해변의 모래에는 끝이 있고, 바다의 절벽에도, 바다 절벽 위의 소나무에도, 파도가 깎아놓은 몽돌에도 끝이 있는데


아직 우리는 끝을 보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들 속에서


끝이 있는데도 끝이 나지 않는 날들 속에서


사랑을 하면서

계속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어디를 둘러봐도 육지가 보이는 섬의 해변에 앉아 있었다


돌아가는 배 위에서는 멀미를 하는 너의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계속되는 것이구나

생각을 했고


- 황인찬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 수록작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전문




파도.jpg Shore and Surf, Nassau (1899)Winslow Homer (American, 1836-1910)


<나의 단상>


세상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러나 하나의 이야기에 끝이 있다고 해서

이야기 읽기를 그만두지 않듯이

언젠가 이 길이 끝난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걸음을 멈추지 않듯이

우리의 현재는 종말에 저당 잡히지 않는다.


멀미를 한다는 건

오늘의 파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 파도 위에서 흔들리며 속을 게워내면서도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

그리고 그 옆에서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


언젠가 다가올 끝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재는 지금 이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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