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봄밤>을 보고 (강미자 감독 / 2025년 7월)
서로의 처참한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함께 무너져가는 사랑 이야기.
권여선의 소설 <봄밤>이 원작이라는 걸 알았기에 아플 걸 예상은 하고 봤지만, 예상을 했다고 해서 덜 아픈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여주인공 영경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주를 연거푸 들이키는데, 클로즈업된 그녀의 얼굴에 이미 길고긴 사연은 펼쳐져 있다. 그렇기에 과거사를 보여주는 장면 같은 건 필요가 없다. 그저 수환과 술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 몇 조각이면 충분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엉망이 된 그들에게 지금 다가온 사랑이다. 한 명은 중증 알코올 중독자, 한 명은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손.
그러나 남루한 신혼방처럼 함께 들어간 요양병원에서도 영경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게 현실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환상이지만, 그들은 환상 속에 놓여 있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알코올에 중독된 몸은 다시 술을 찾으러 나가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어도 불치병으로 굽어져버린 몸은 다시 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꼭 극복해야만 아름다운 것인가. 극복하지 못한 상태로도 사랑은 이어진다. 엉망인 상태로도 서로를 안을 수 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자꾸만 쓰러지면서도 조금씩 수환을 향해 다가오는 영경과, 굽어진 다리로 걷지 못해 몸을 바닥에 질질 끌고 기어서 끝내 영경에게 다가온 수환이 흙투성이가 되어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에서 울지 않을 도리는 없다. 처참하게 흙바닥에 뒹굴어도, 끝내 무너질 걸 알아도, 서로에게 갈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수환을 떠나보낸 후의 어느 봄밤, 하얗게 피어난 목련을 보고 오열하는 영경의 얼굴을 오래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경이 술에 취하면 주정처럼 읊조리던 김수영의 시 <봄밤>도,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마치 또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나오던 김민기의 노래 <나비>도.
홍상수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술을 부르는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대낮이었고, 비라도 내렸으면 했는데 비는 오지 않고...
눈이 부은 채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민기 노래만 하염없이 들었다.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