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계영 『꼭대기의 수줍음』
흩어진 점들을 순서대로 연결하면
토끼나 돼지 같이
친숙한 동물의 윤곽이 드러나던
점잇기를 떠올린다.
흩어진 매순간의 나를 연결하면
불쑥 드러날 윤곽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다.
그것을 나라고 불러도 될까.
- 유계영 『꼭대기의 수줍음』 중에서
<나의 단상>
점잇기라는 것은 그 형체의 라인을 따라
최대한 많은 점을 연결할수록
실체에 가깝게 그릴 수 있다.
토끼를 그리는데 점이 세 개 뿐이라면
그건 토끼가 아니라 삼각형.
점이 다섯 개라면 그건 오각형.
그러니까 내가 삼각형을 보았다고 해서
실체가 삼각형이라고 쉽사리 판단하지 말자.
나는 토끼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점 중에
단 세 개를 발견해 이어 붙였을 뿐.
다른 점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