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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잇기의 오류

유계영 『꼭대기의 수줍음』

by 서정아

흩어진 점들을 순서대로 연결하면

토끼나 돼지 같이

친숙한 동물의 윤곽이 드러나던

점잇기를 떠올린다.

흩어진 매순간의 나를 연결하면

불쑥 드러날 윤곽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다.

그것을 나라고 불러도 될까.


- 유계영 『꼭대기의 수줍음』 중에서



스케치.jpg Antti Drawing (1908)Venny Soldan-Brofeldt (Finnish, 1863-1945)


<나의 단상>


점잇기라는 것은 그 형체의 라인을 따라

최대한 많은 점을 연결할수록

실체에 가깝게 그릴 수 있다.

토끼를 그리는데 점이 세 개 뿐이라면

그건 토끼가 아니라 삼각형.

점이 다섯 개라면 그건 오각형.


그러니까 내가 삼각형을 보았다고 해서

실체가 삼각형이라고 쉽사리 판단하지 말자.

나는 토끼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점 중에

단 세 개를 발견해 이어 붙였을 뿐.

다른 점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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