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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 Apr 06. 2024

우주의 확장은 디깅을 타고

  요 근래 새로운 사람들과 밥 먹을 기회가 있었거든요. 서로 나이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달라서  정말 흥미로운 자리였어요.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모인 자리라 작가님도 계셨고, 미술계 종사자도 계셨고, 전공생과 비전공생도 있었습니다.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현장 관련 된 이야기도 듣는데 정말 재밌고 즐거웠어요.

 저는 인터뷰 읽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하나의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을 좋아해요. 그 사람의 생애부터 시작해서 그를 이루고 있는 생각들과 취향, 요즘 관심사, 앞으로의 꿈 등을 알게 되면 하나의 우주를 알게 되는 기분이라서요. 그 과정에서 새로 알게 되는 것들과 타고 넘어갈 수 있는 생각들 등 그 모든 것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전 첫 만남을 제일 긴장하는데 모순적이게도 초반 과정을 좀… 기대합니다. 우주의 확장이 일어나는 중요한 순간이니까요. 이 확장의 맛을 알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에 긍정적인 입장이 되었어요. 그전까진 되게 폐쇄적이었는데 요즘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 생길 정도? 기회 되면 용기 내서 말도 걸어보고요. 제 입장에선 이게 정말 크나큰 발전이랍니다. 사람… 디깅이라고 할까요… 우하하.

 생각해 보면 '디깅'이라는 게 약간 오타쿠 적인 면모가 들어간 과정이잖아요. 전 어려서부터 디깅을 숨 쉬듯이 했었거든요. 아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셨다면 대부분 그러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혼자서 조용히 탐구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거죠. 

제 기억 속 최초의 디깅은 펜이었어요. 제가 필기 잘하는 걸로 한 자부심 하거든요? 물론 필기와 성적은 별개입니다. 펜을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필기를 잘하게 된 거라 주객전도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펜을 좋아해서 광적으로 모았었어요. 그것도 한 브랜드 한 제품을 딱 꼽아서 그 펜의 전색상을 하나하나 사들이는 거예요. 제 어린 시절 용돈은 전부 그 펜을 사는데 썼었어요. 아예 그 펜만 담은 필통이 따로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 취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여전히 심심하거나 시간이 뜨면 문구점에 펜을 구경하러 가요. 집에 있는 걸 까먹고 또 사는 경우도 여전히 다반사고요. 

그다음 디깅이 음악이었습니다. 물론 장르는 계속 바뀌었지만. 어렸을 때는 당연히 대중가요를 많이 들었었고요. 초등학생 고학년부터 중학교 때까진 힙합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한국 힙합을 그렇게 들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래퍼로 넘어간 거라 그때 정말 힙합 사이트를 얼마나 들락날락했나 몰라요. 새로 올라온 믹스테이프는 없나, 요즘 유행하는 래퍼들은 누구인가 하면서 하루종일 거기에 빠져 살았었어요. 쇼미더머니가 유행하면서 언더에서 보던 래퍼들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보면 반갑기도 했고요. 이 취향은 조금 더 크고서는 밴드로 넘어갑니다. 어려서부터 힙합을 들은 것에서 눈치를 챌 수 있듯이 저는 좀 사운드가 빵빵한 음악을 좋아해요. 악기도 많아야 하고, 베이스도 울려야 하고, 비트는 빠르고 커야 합니다. 당연히 밴드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취향이죠? 아마 힙합의 유행이 점점 자극적이고, 비주얼 적인 부분을 추구하게 되면서 거기서 오는 피로감으로 인해 넘어간 것도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해외 밴드 음악들은 가사보다 사운드 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밴드를 단순히 좋아하는 것에서 사랑하는 것으로 바뀌면서부터 꿈꾸는 것 중 하나가 밴드를 만드는 거거든요? 악기의 소질이 전혀 없는데도 제 꿈이 죽기 전 단 한 번이라도 밴드 멤버가 되는 거예요. 제 포지션은 베이스. 전 베이스가 참 좋아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음악을 들을 때 베이스를 한 번 의식하게 되면 모든 음악에서 베이스만 듣게 된다. 제가 그래요... 베이스가 없으면 심장이 안 뛰고요. 공연을 보러 가도 베이시스트만 뚫어져라 봐요. 어쩔 수 없어요. 베이스만 바라보는 몸이 돼 버린 거예요. 

 디깅 말 하다가 별 게 다 나오네요. 아무튼 전 여전히 디깅을 통해 제 우주를 넓히고 있습니다. 아직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정말 많아요. 밴드 결성을 위해 베이스를 배워야 하고요. 제대로 커피도 배워 보고 싶고요.  유리나 금속 공예 혹은 목공도 좋고요. 그림도 다시 배우고 싶고요. 그 외에 것들도 많은데 하나하나 적으면 너무 기니까 여기까지만요. 

 다들 어떤 걸 디깅 하시나요? 취향보다는 조금 더 깊고 좁은 자리를 차지하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제 사람 디깅이 여기서 또 나오네요... 제 우주의 확장에 힘을 보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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