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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caa Dec 28. 2021

다산의 공감 연습(16장)

16장 공감의 윤리학/선사후득先事後得

번지의 세 가지 질문 중 숭덕의 요령을 두고 공자는 “선사후득先事後得”을 언급했다. 정약용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사후득이란 노고勞苦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하고 이록利祿은 다른 사람보다 뒤로 한다는 것이다.

先事後得者。勞苦先於人。利祿後於人也。《논어고금주》     


<옹야>편 20장의 ‘선난후획’의 의미와 거의 같다. 선사先事는 “노고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하는 것勞苦先於人”이라고 풀었고, 후득後得은 “이록은 다른 사람보다 나중에 하는 것利祿後於人”이라고 풀었다. 그리고 두 용어에 ‘다른 사람보다[於人]’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넣어 풀이했다. 


더욱이 정약용은 이 문장에서 서恕의 의미를 부여했는데, ‘자신을 위해’ 어려움을 먼저 감내하고 ‘자신의’ 이득을 나중에 취하는 것이 서恕가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먼저 어려움을 감내하고 ‘다른 사람보다’ 나중에 이득을 취하는 순수한 이타적 행동이 서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서의 개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서가 인을 실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을 실현하는 것에는 극기복례, 애인愛人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정약용은 《논어고금주》에서 특별히 서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선사후득”에 대한 설명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반복된다.     


원래 인仁을 구하는 방법은 강서強恕하는 데에 있다. 노고는 남보다 먼저 하고 이록은 남보다 뒤로 하는 것이 서恕의 도道이다.

原來求仁之法。在於強恕。勞苦先於人。利祿後於人。恕之道也。《논어고금주》     


“강서強恕”라는 말은 사서를 통틀어 《맹자》에서만 단 한 번 등장하는 글자이다. 서恕라는 글자는 《대학》에서는 “소장호신불서所藏乎身不恕”라는 문장에서 ‘불서不恕’라는 표현으로 한 번 등장하고, 《중용》에서는 “충서위도불원忠恕違道不遠”이라는 문장에서 ‘충서忠恕’라는 표현으로 한 번 등장했다. 《논어》에서는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인>편 15장에서는 ‘충서’로, <위령공>편 23장에서는 ‘서恕’라는 한 글자로 등장했다. 정리하자면 강서는 서恕에 관한 《맹자》 고유의 표현 형식인 셈이다.  

   

만물의 이치가 다 내게 갖추어 있느니라. 자기를 반성하면서 정성을 다할 때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고, 힘써 충서忠恕의 도道를 실천하면 인仁이란 코앞에 있는 것이다.

萬物皆備於我矣。反身而誠。樂莫大焉。強恕而行。求仁莫近焉。《맹자》 <진심> 상편 4장     


정약용은 《맹자요의》를 통해 위 원문 속 “만물의 이치”가 ‘일관충서一貫忠恕’에 해당하는 것이라 단언했다. 또한 다양한 예시를 들어 모든 인간은 보편적 감정과 욕구를 지녔다는 사실, 즉 좋은 것을 먼저 하려는 마음[欲先]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충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맹자》의 강서 역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살피며 보다 좋은 사회를 추구하도록 이끄는 공감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맹자》의 정치와 《논어》의 “선사후득”을 정약용은 강서라는 한 단어로 요약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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