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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caa Jan 05. 2022

다산의 공감 연습(18장)

18장 공감 지식/지급지 인불능수지知及之 仁不能守之

한때 천주교에 깊이 빠졌던 정약용이지만 유배지에서 그는 다시 공자의 입장으로 선회한다. 정약용은 “하늘을 섬길 때에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과 같이 경애한다事天如事親”라는 《예기》 <애공문哀公問>편을 인용하며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공자의 관심은 귀신이나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니었다. 현실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렇게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나라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유세하였지만 등용되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공자는 천명을 탓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논어》 <요왈堯曰>편 3장에서 공자는 ‘명을 아는 것[知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명天命을 모르면 참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不知命。無以爲君子也。

예법禮法을 모르면 몸 둘 곳이 없느니라. 

不知禮。無以立也。

말을 못 알아들으면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不知言。無以知人也。《논어》 <요왈>


공자는 여기서 “지명知命”뿐만 아니라 “지례知禮”, “지언知言”을 언급하는데, ‘지례’와 ‘지언’은 사람과의 관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런데 ‘명命’은 사람의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기술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신의 미래[命]를 알기 위해 ‘거리의 예언자들’을 찾는다. 하지만 공자의 관심은 현대인들이 찾는 운명과는 다른 데 있었다. 공자는 군자가 되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천명을 알고자 했다. 잘 알려진 <위정>편 4장의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라는 문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지천명知天命”은 초자연적 세계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이롭게 하기 위한 앎[知]’을 추구하는 것이다. <위령공>편 32장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인에 대한 정약용의 정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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