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적절한 공감/과유불급過猶不及
맹자는 춘추전국 시대의 정치를 패도 정치라고 정의했다. 패도 정치란 이전의 요堯·순舜과 같은 성인들이 펼친 왕도 정치와 상반되는 개념이다. 공자는 관중에 대해 “상환공 패제후相桓公 霸諸侯”라 하여 “환공을 도와 제후의 두목이 되게 하였다”라고 적시하였다. 맹자의 개념으로 ‘패霸’는 덕德이 아닌 힘[力]으로 얻은 권력이기 때문에 공자의 인仁 사상과도 어긋난다. 하지만 관중이 패왕霸王이 되어 결과적으로 도덕과 문화를 지켜 내었으니, 공자는 그 치적으로 관중을 인자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한 정약용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자규子糾와 소백小白은 모두 희공僖公의 아들이다. 이미 그 군주의 지위에 바르게 정립했으면 이는 나의 군주다. 자규가 아직 죽지 않았을 때는 자규를 군주로 삼았기 때문에 환공을 원수로 할 수 있으나, 자규가 이미 죽었는데도 오히려 반드시 그를 원수로 하겠는가? 소홀召忽의 죽음은 진실로 인仁이 될 수 있고, 관중의 일도 반드시 불인不仁하지 않은 것이다.
子糾、小伯。均是僖公之子。旣正其位。斯我君也。子糾之未死也。我以子糾爲君。故可以讎桓。子糾旣死。猶必讎之乎。召忽之死。固爲仁矣。管仲之事。未必爲不仁也。《논어고금주》
관중이란 인물은 공자가 내세운 춘추대의春秋大義에 가장 배치되는 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자공도 관중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의리와 명분 측면에서 비판했던 것인데, 예상 외로 공자는 자공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이민족의 침입을 막았으니 그 치적으로 불인하지 않다는 면죄부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정약용은 치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의리와 명분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관중의 불인을 변호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