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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caa Dec 08. 2021

다산의 공감 연습(8장)

8장 분노와 과실/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옹야>편 2장의 다음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공자 : (안회는) 가난 속에서도 투덜대는 일이 없었고 허물도 두 번 다시 짓는 일이 없더니, 

不遷怒。不貳過。

불행히도 일찍 죽고 시방은 없습니다. 아직은 학문 좋아한다는 애의 이야기를 못 듣고 있습니다.

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未聞好學者也。


즉 안연의 뛰어난 면모는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은 것不遷怒”과 “같은 실수를 두 번 범하지 않는 것不貳過”이다. 이것이 자공 스스로 안연이 열 배 이상 탁월하다고 인정한 부분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자공의 겸손한 대답에서 서의 실질을 파악했듯이, 이에 비추어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에서도 서恕로써 새로운 해석을 끌어낼 수 있다.


욕구[欲]가 칠정, 즉 인간의 기본적인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분노[怒]도 인간의 극히 기본적인 감정이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데(올바른 의학적 용어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 욕구와 마찬가지로 분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분노를 참거나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 무작정 분노하지 않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정약용은 “불천노不遷怒”에 대해 “가난하고 고생스럽되 이를 원망하고 탓함이 없는 것不以貧苦而有怨尤”이라고 설명한다. 《한글 논어》에서는 정약용의 주석을 반영하기 위해 “가난 속에서도 투덜대는 일이 없었다”라고 번역했다. 만약 그냥 ‘투덜대지 않았다’고 하면 안연의 상황에 따른 탁월함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 유학자들의 이러한 해석을 접할 때마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입장에서 곤욕스러울 때가 있다. 가난하고 고생스럽다면 원망하고 무언가를 탓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이러한 자연스러운 감정을 부정하는 듯한 해석을 보면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안연이라고 해서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누군가를 탓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연은 원망[怨尤]을 분노라는 형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지 않았기에 그를 탁월하다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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