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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caa Dec 10. 2021

다산의 공감 연습(9장)

9장 매너의 승리/극기복례克己復禮

정약용도 기본적으로는 성리학 전통의 입장에서 《논어고금주》에서 이를 접근한다. 우선 극기克己의 ‘기己’에 대해 ‘나 자신[我]’이라고 설명하고, 두 몸과 두 마음을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두 몸[二體]이 있고 또한 두 마음[二心]이 있으니, 도심道心이 인심人心을 이기면 대체大體가 소체小體를 이기게 되는 것이다.

我有二體。亦有二心。道心克人心則大體克小體也。《논어고금주》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은 오경五經 중 하나인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고, 대체大體와 소체小體는 사서 중 하나인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이것만 보아도 성리학에서 어떤 것을 중시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양사상의 흐름을 간단히 정리해 볼 때, 마음을 도심과 인심으로 구분했던 전통이 있고, 몸을 대체와 소체로 구분했던 전통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송대宋代 성리학자들은 본성[性]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었다. 마음, 몸, 본성을 각각 두 가지로 설명했으므로, 이러한 흐름에서 조선 유학자들이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통해 감정[情]을 두 가지로 설명하려 했던 시도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정약용은 《맹자》의 대체와 소체라는 용어를 자주 인용했지만, <안연>편 1장을 설명할 때는 도심과 인심을 주로 다루었다. 몸을 두 가지로 나누고,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눈 것은 서양에서 ‘영혼-육체’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과는 매우 상이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전통에서 육체는 부정적인 것으로, 영혼은 순수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동양전통에서 마음과 몸은, 심지어 본성조차도 선과 악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정약용은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육체와 영혼의 관계가 아니라, 성리학적 용어인 욕慾과 도道의 관계를 통해 마음의 문제를 다룬다.


분명히 욕慾과 도道 두 가지는 마음속에서 싸워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明明慾道二物。心戰角勝。

《논어고금주》


이렇게 정약용은 마음의 문제를 다시 욕과 도의 문제로 전환시켰다. 욕은 사욕이나 인욕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사용했고, 도는 도심으로서 성리학의 최상위 개념인 천리天理와 통하는 맥락으로 사용했다. 성리학 전통에서 심성수양心性修養의 목표는 인욕을 소멸시키고 천리天理를 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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