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웹소설
김태산 대리가 기업IR담당자 연수 기획안을 만들며 모니터와 키보드를 번갈아 보고 있다
일명 독수리타법이라고 키보드를 외워서 안보고 치는 것이 아니라 한 손가락으로 한타한타 확인하며 글을 쓰기 때문에 타이핑에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독수리타법으로 타이핑 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편이었다
한참을 치고 있는데 김태산 대리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대한증권 잠실지점 김태산 대리입니다"무심결에 이렇게 핸드폰 전화를 받고 "아차" 싶었는데 김태산 대리 개인 핸드폰으로 온 전화까지 너무 사무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잠실지점이라니 연수원 출근한지 이틀째인데 여전히 전화로는 잠실지점이 입에 익은 탓이었다
"연수원으로 갔다고 하지 않았나?"김요한 한국태양광IR팀장이 물었다
"아이고 팀장님, 제가 아직 입에 잠실지점이란 말이 익숙해서요. 어쩐 일이세요"김태산 대리가 말했다
"어떻게 출근 잘 했나 싶기도 하고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임시주총 준비할 것도 있구"김요한 IR팀장이 만나자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내일 어떠세요. 저도 할 말이 좀 있는데요"김태산 대리는 기업IR담당자 연수에 대해 김요한 IR팀장과 상의하고 싶었다
"그래요 그럼 내일 내가 김태산 대리 있는데로 갈께"김요한 IR팀장이 말했다
"아이고 그래주시면 고맙죠. 제가 여기 맛난 식당 알아볼께요"김태산 대리가 말했다
"그럼 내일 오후에 출발하기 전에 다시 전화줄께요"김요한 IR팀장이 이렇게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김요한 IR팀장에게 형님 소릴 하긴 했지만 아직은 전화상으론 서로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하는 사이였다
김태산 대리는 내일 김요한 IR팀장이 오면 반주하며 확실하게 형님 대우를 해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도 그럴께 김요한 IR팀장이 사적으로 알고 있는 기업IR담당자들만 모여도 김태산 대리가 만들려고 하는 기업IR담당자연수 모임이 제대로 출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태산 대리는 내일 김요한 IR팀장과 만나서 제안할 걸 생각하니 독수리타이핑이 더 날아다닐만큼 신이난 모습이다
오송미 사원이 김태산 대리가 신나서 타이핑하는 모습을 보더니 한 마디 한다
"뭐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타이핑 속도가 장난 아니게 빨라지셨네요"오송미 사원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있지, 내일 좋은 일이 있어요"기분 좋은 목소리로 김태산 대리가 답했다
"저는 문방구 용품 구매하러 다이소 갈건데 뭐 사실 것 있으신가요?"오송미 사원이 말했다
"그거 본사에서 지정한 곳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 아닌가요?"김태산 대리가 물었다
"예 그렇기는 한데 우리 연수원 뒤에 있는 다이소 물건이 더 싸고 좋아서 왠만한 건 직접 구입해서 사용해요. 배달도 해 주니까요"오송미 사원이 답했다
"난 스티커하고 호치케스 알 그리고 당장은 그렇네"김태산 대리가 부탁했다
"예 전 다이소 갔다 올께요"오송미 사원이 사무실을 나갔다
둘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혼자만 남아 있으니 사무실이 좀 썰렁하기는 했다
김태산 대리가 기획안을 신나서 계속 작성하기 시작했다
강동훈 연수원장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니 김태산 대리가 생각만 해 오던 기업IR담당자 연수를 실제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기업IR담당자들과 연수 핑계로 자주 만나다보면 사적으로도 친해지고 그러면 회사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상장사들이 원하는 것들을 파악해 대한증권의 금융상품으로 제안할 수도 있고 회사채 발행이나 자회사 상장 같은 것도 주간사 업무를 할 수도 있어 여러가지로 수익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신나게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김태산 대리는 이리 쉬운 걸 왜 아무도 생각 안 했는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반적인 증권사 업무도 아니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이것도 영업의 일종이라 당장 수익이 나지않으니 아무도 안 한 것이라 생각 들기도 했다
영업이란 것이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좀처럼 생기기 어려운데 그런 신뢰를 쌓기 위해서라도 자주 만나고 말을 섞어야 한다고 김태산 대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초기에 연수프로그램은 김태산 대리가 동기들 중 전문분야의 친구들을 불러다 강사로 강연을 부탁할 수 있지만 찾아오는 기업IR담당자들 저녁식사나 뒷풀이 자금이 필요한데 이건 김태산 대리 사비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초기에 소규모 인원으로 시작해 점점 기업IR담당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 이런 모임이 정보교류의 장이 되기 때문에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텐데 그때는 본사에 지원을 요청할 수 밖에 없어 고민이 되기는 했다.
김태산 대리의 기획안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타이핑이 멈추고 말았다
조직이란 것이 밥그릇 싸움이 가장 무서운데 시작은 김태산 대리가 하지만 결국 기업IR담당자 연수프로그램에서 수익기회가 많아지면 이를 빼앗아 가려는 본사 부서간의 쟁탈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일단 가까운 구로지점도 대부분 구로디지탈단지와 가산디지탈단지의 벤처기업들이라 잠재고객사들이기 때문에 이 업무를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있고 본사 영업부도 전국으로 이런 모임을 확대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었다
특히 기업금융팀은 가장 탐을 낼만 한데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그리고 IPO업무 같은 것은 기업금융팀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김태산 대리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밥그릇 싸움하는 모습이 떠오르고 말았다
지금부터 김태산 대리가 사비를 털어가며 잘 키워놓으면 결국 잘 차려진 밥상을 빼앗겠다고 지점들과 본사 부서 간에 밥그릇 싸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업IR담당자 연수프로그램의 취지도 모르고 꿀만 빨겠다는 것들이 받아가면 결국 다 망가뜨리고 말 것이란 점도 잘 알고 있고 결국 다른 증권사들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경쟁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더 많은 물량을 쏟아붓는 쪽이 이기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영업이란게 먼저 시작한 쪽 보다 더 많이 투자하고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는 쪽으로 좋은 결과가 가기 마련인데 지금의 대한증권은 그런 여유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꿀만 빠는 비효율적인 조직이란 생각이 들어서 자신이 괜한 짓을 하는 것인가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솔직히 잠실지점에서 근무하면서 책상에 앉아 전화기만 붙잡고 HTS에 나온 뉴스로 고객들에게 투자를 권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저래서 수익이 나겠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김태산 대리처럼 직접 기업을 방문해 기업IR담당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 기업현황을 파악해 고객들에게 투자조언하는 것과는 수익률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기업IR을 받으러 직접 상장사를 방문해 기업IR담당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기업IR담당자들이 놓치고 있는 시장의 현황을 직접 전달해 주고 기업IR에 이런 부분이 반영되게하면 주가관리에 도움도 되기 때문에 기업IR담당자와 증권사 영업직원 모두 윈윈하는 모임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대화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가져오기 때문에 공정공시 취지에는 위배될 수 있지만 아직 상장사쪽도 경영내용을 구체화하지 않고 생각만 갖고 있는 부분에 대해 대화를 한 것이라 꼭 법위반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즉 선행매매가 되기 위해서는 상장사가 경영판단을 내리고 공시의무가 생긴 사안에 대해 미리 정보를 증권사 영업사원에게 줘야 하는데 이런 기업IR 방문에서 오간 대화는 아직 경영사항으로 결정되기 전의 날것인 정보이기 때문에 증권거래법 위반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다
앞으로 상장사가 어떤 경영을 펼칠지 예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식시장에서는 남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투자결정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결국 기업성장을 예상할 수 있으냐의 문제에 귀결되기 때문이다
주가는 기업실적을 반영하게 되어 있고 실적에 6개월여 선행한다는 증시격언처럼 기업경영을 하는 경영자들인 임원급 인사들과 사적으로 전화할 수 있으면 그때부터 남들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서 투자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IR담당자들이라고 하지만 부장급 이상 공시서류에 이름이 올라가는 분들이고 이들이 뒤에 임원을 달고 CFO가 되던지 관리총괄이사가 되는 데 부장때부터 인맥을 쌓아두면 그 상장사는 두고두고 수익을 가져다 주는 꿀항아리가 되는 것이었다
각 증권사 애널들이 기업을 방문해 IR을 받으면서 이런 인연을 잘 맺어두면 나중에 애널리스트에서 물러나 기업금융으로 가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증권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기울어진 운동장의 본 뜻을 모르고 그저 언론에 그런식으로 언급되니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데 실제로 정보를 만들어 내고 유통하는 측면에서 개인투자자들은 가장 말단에 모두가 다 아는 정보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기업경영관련 정보를 얻게 된다
증권사 영업사원들은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서 정보를 만들어 내는 초기부터 관여하던지 개인투자자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언론을 통해 알게 되던지 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김태산 대리는 경영자들과 함께 대화하며 시장을 바라보는 쪽이라 가장 초기에 정보를 취득하는 쪽에 서 있었다
한국태양광 건만 해도 지금은 한용수 대리에게 물려주었지만 여전히 한국태양광과 증시관련 협의를 하는 것은 김태산 대리이고 한용수 대리는 미안한 말이지만 관련실무업무만을 하는 심부름꾼이나 마찬가지였다
김태산 대리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타이핑이 멈춰버렸다.
밥상 잘 차려놓으면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에 이걸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마져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동훈 연수원장이 관심을 갖고 있으니 혹시나 이 분이 물심양면으로 잘 도와주시면 후에 하나의 팀으로 독립해 다시 본사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만 되면 밥상을 잘 차려 김태산 대리가 식사를 잘 끝마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타이핑을 시작했다
오후 5시 김태산 대리가 벽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퇴근시간에 가까워졌는데 문세상 기자가 연락이 없었다
오늘 나가리인가 생각하다가 먼저 전화를 해 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문기자님?"김태산 대리가 전화를 하자 문세상 기자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길거리인지 차소리도 들리고 주변이 좀 시끄럽게 느껴졌다
"아 김대리 여기 마지막 은행 지점 한군데 갔다가 연수원쪽으로 갈께. 미리 전화 못해 미안, 이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께"문세상 기자가 뭔가 새로운 걸 알게 되었는지 목소리에 약간의 흥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 한건 하셨군요. 배고파요. 빨랑 끝내고 오세요. 오시면 전화주시구요. 바로 나갈께요"김태산 대리가 이렇게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이제 한시간 밖에 안 남았으니 기업IR담당자 연수 초안을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산 대리의 독수리 타법이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치며 창공으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