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은 사람을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
비행기 표를 끊으면서도 반쯤은 믿기지 않았다.
딸이 캐나다로 간 건 2년 전이다. 유아 교사로 일하겠다며 훌쩍 떠난 뒤, 나는 매번 전화기 너머로만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가보나' 싶어 용기를 냈지만, 남편은 그렇게 길게 휴가를 낼 수 없다고 했다. 혼자 공항에서 짐을 부쳤다. 탑승구 대기실 의자에 앉아 가져간 책을 읽었다. 하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나같이 혼자 가는 사람은 없는지 자꾸 살피게 되었다. 열 시간을 날아갔다.
비행기 안에서 딸이 미리 귀띔해 준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딸은 입국심사가 무인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한국어를 선택해 묻는 말에 ‘아니오’로 표시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돌발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서 몸이 굳었다. 다행히 입국심사는 딸이 말한 대로였다. 화면을 천천히 읽으며 하나씩 눌렀고 별 탈 없이 출국장으로 걸어 나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딸이 보였다.
아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안 나와. 목 빠지게 기다렸잖아."
나는 "문자 보냈잖아"라고 했다가 핸드폰을 보니 '전송 실패' 라고 쓰인 카톡을 확인했다.
포옹을 하고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3월의 캐나다 날씨는 차가웠다. 패딩을 입어도 목을 스치는 바람이 쌀쌀했다. 아이 손에는 얼음이 반쯤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추운데 왜 아이스야?"
"이렇게 먹어야 기운이 난다니까."
사무실에서 젊은 직원들이 한겨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걸 보며 '젊음이 좋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딸 손에 들린 그 차가운 컵을 보니 걱정이 먼저 올라왔다. 저 아이, 많이 버티며 살고 있구나. 커피 카페인이 몸에좋지 않다며 디카페인을 찾아 마시던 아이었다.
공항을 나서며 고가 도로와 전철 벽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회색이었다.
하늘도, 콘크리트도, 공기도 차갑고 낯설었다. 그나마 공항 앞에 서 있는 토템 상이 알록달록했다. 긴 나무에 부족의 문양을 새겨 넣은 그 상징물이 이상하게도 조금 위안이 됐다.
딸은 먼저 전철 카드를 사야 한다며 무인 판매대로 나를 데려갔다. 판매대 앞에 서니 온통 영어다. 딸이 능숙하게 화면을 넘기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충전용으로 살까, 한 달 무제한으로 살까?"
한국말인데도 나는 무엇을 사야할지 선택할 수 없었다. 멍하게 서 있는 나를 보더니 딸이 한달권을 선택했다. 신용카드를 잊고 온 딸에게 내 카드를 내밀었다. 파란 교통카드가 나왔다. 딸은 "캐나다 첫 경험"이라며 사진을 찍어줬다.
나는 그 카드를 핸드폰 케이스 뒤에 끼웠다. 핸드폰은 목줄을 달아 목에 걸었다. 카드 하나, 줄 하나. 별것 아닌 것들인데, 이상하게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다. 잃어버릴 게 없다는 안도감이랄까. 핸드폰 목줄 하나가 긴장을 조금 덜어줬고, 무제한 교통카드 하나가 낯선 도시를 조금 덜 낯설게 만들었다.
딸은 내가 캐나다에 오기 전, 전화할 때마다 말했다.
"혼자 다 결정하고 해결하려니 너무 힘들어."
그때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얇은 위로였다. 직접 겪어보지 않아 그 무게를 몰랐다.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서 긴장하지 말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긴장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그 긴장을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다. 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나는 핸드폰 목줄로.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내 긴장을 가장 많이 누그러뜨린 건 딸의 얼굴이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 15일간의 캐나다 여행은 그렇게 딸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