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지키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2만4천 원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하루
9월 초, 한 60대 여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차량에 걸린 압류를 풀어 달라는 민원이었다.
알아보니 개인균등 주민세 4년치, 24,680 원이 체납된 상태였다.
그녀는 지금 차량을 이전해야 한다고 했다. 고지서를 보내주면 내겠다고 했다. 지금 상황이 세금을 납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단 압류를 풀어달라고 했다.
나는 원칙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계좌 이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걸 할 수 있으면 내가 이러겠냐고 따졌다. 난 안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 집을 압류하세요.”
나는 더이상 실랑이를 할 수 없었다. 2만4천원 때문에 아파트를 압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대안을 제시하는 이상 달리 반박할 수 없었다. 먼저 압류를 풀어주고 그리고 고지서를 보내기로 했다.
며칠 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고지서 받으셨죠? 납부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자꾸 전화하세요?”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녀는 내가 미아냥 거린다고 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난 그녀가 안내면 부동산까지 압류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 있었다. 그러니 말이 좋게 나올리가 없었을 것이다. 짜증스런 그녀의 말을 더이상 듣기 싫었다. 고지서 받았는지 확인 전화를 했다는 말만 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10월 중순이 된 지금까지도 그녀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
2만4천 원.
커피 몇 잔 값도 안 되는 돈이지만, 그 돈 때문에 내 마음이 무겁다.
압류 절차를 밟자니 너무 과한 것 같고,
그냥 두자니 원칙을 어기는 것 같다.
그녀의 “집을 압류하라”는 말은 정말로 내 집을 가져가도 된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세상에 대한 체념과 분노가 뒤섞인 말이었을까.
뉴스를 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장관들이 모여 있던 CCTV 영상이 공개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한덕수 전 총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그 민원인의 얼굴이 겹쳐졌다.
책임을 피하는 모습,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
나는 문득 나도 그렇게 살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상황이 오면 나도 그럴까.
공직 생활 30년이 넘었지만,
이런 순간마다 내 안의 기준이 흔들린다.
원칙을 지키는 게 옳은 일임을 알지만,
그 옳음이 늘 따뜻한 건 아니다.
때로는 너무 차갑다.
모니터 앞에 그녀의 이름이 적힌 포스트 잇이 덜렁거린다.
'김 oo / 9.30.체납 확인 해서 납부하지 않았으면 부동산 압류'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원칙은 지키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