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방향

익숙한 일상 속에서 들어난 내 진짜 마음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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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아들은 훈련이 끝났다며 일주일만에 전화를 했다. 말을 꺼내기전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산행 훈련 동안 산을 오르내리느라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잠은 텐트에서 자고, 식사는 비밀봉지에 밥과 반찬을 넣고 섞은 뒤, 구멍을 뚫어 짜먹었다고 한다. 맛있었냐고 물으니 맛있었다고 했다. 힘들어도 잘 참고 지낸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토요일에도 전화를 한다더니 오지 않았다. 대신 “근무 있어서 전화 못했어요”라는 짧은 문자만 남겼다. 나는 그저 보고 넘겼다.

아들은 큰시누이에게도 전화를 했나보다. 큰 시누이는 산을 넘느라 허벅지가 아파서 전화할 힘도 없는것 같다며 아들의 말을 전하며 안타까워했다. 생각해보면 아들은 나에게 힘들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어쩌면 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다. 시누이는 아들의 한마디에서 그의 상태를 읽어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내가 듣고 싶은 말과 걱정할 말의 경계를 알고, 그 안에서 말과 침묵을 고르는 지도 모르겠다.

주말에는 요약독서법 강의를 들었고 글 퇴고도 했다. 토요일 저녁에는 시누이 아들 성원이 생일이라 시댁 식구들과 청량리 로운 샤브샤브에 갔다. 예전에는 내 맞은편에 아들과 딸이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큰시누이 부부가 자리했다. 식당 풍경은 달라졌는데, 그 빈자리는 여전히 내 눈에만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콩나물과 무만 샀다. 예전에는 카트에 냉동식품과 과자, 음료를 가득 넣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반조리 제품을 사려다가도 주중에 집에서 밥을 먹을 날이 들쭉날쭉해 망설여진다. 남편은 뭐든 사라고 잔소리를 늘어 놓았지만, 나는 사다 놓으면 상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냉동실에 있는 동태를 꺼내 동태탕을 끓여 일주일 먹을 생각만 났다.

아이들이 떠난 뒤, 나는 집에서 밥보다 다른 음식으로 끼니를 떼웠다. 남편은 냉동밥이나 햇반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는 그게 그다지 미안하지 않다는 거다. 아들이 집에 있을 때는 귀찮아도 고기를 볶고 국을 끓였다. 아들이 군대에 간 뒤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제 끓인 동태탕이 그나마 오랜만에 해 본 요리였다.

일요일 밤 10시, 줌 독서모임을 마칠 즈음 남편이 젖은 머리로 들어왔다. 늦게까지 탁구를 치고 왔다고 했다. 저녁을 못 먹었다기에 김치와 무채를 꺼내놓고 낮에 끓인 동태국을 데웠다. 남편은 탁구장 사장이 가게를 접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농담처럼 “내가 탁구장을 차려야겠어”라고 말했는데, 나는 습관처럼 “그래요, 그렇게 해요” 하고 대답했다.

그 말을 하고 난 뒤 마음이 순간 멈췄다. 남편에게 탁구장을 차리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왔다는 것에 움찔했다. 난 남편을 귀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내면이 겉으로 들어난 것 같았다.

가까운 남편보다 멀리 있는 아들에게 마음이 더 가는 나. 반성해도 쉽게 달라지지 않는 이 감정의 방향을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엄마라는 자리는, 아내라는 자리보다 훨씬 강한 마음의 힘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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