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배려를 바라보며 내 마음을 돌아보다
어제 회식은 작은 일처럼 지나갔지만,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길게 이어졌다.
회식이라는 건 늘 그렇다. 누구에게는 별일 아닌 행사지만 누군가에게는 준비하고 조율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늘 “어디든 괜찮다”고 말하는 편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선택에 오래 머무는 것이 버겁웠다. 누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게 더 편했다. 그게 내 성향이었고 나는 그 성향을 오랫동안 아무 의심 없이 살아왔다.
우리팀에 선희주임이 있다. 초등생 아이를 둔 맞벌이 워킹맘이다. 그녀는 그녀의 일 뿐만아니라 우리팀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다 해내는 사람이다. 우리팀의 크고 작은 구멍을 막아주는 사람은 언제나 선희 주임이었다.
이번 회식도 마찬가지였다. 부서에서 15만 원을 지원받았다, 팀 회비를 조금 보태면 갈 수 있는 곳들을 미리 계산해본 사람도 그녀였다. 팀원들의 의견을 슬쩍 살피고, 어딜 가면 모두가 무리 없이 만족할지 고민한 것도 그녀였다.
나는 그 모든 과정에서 그저 “응, 그렇게 해줘”라고 답하는 쪽이었다. 나는 선택을 피해왔고, 그녀는 그 빈자리를 자연스럽게 채워왔다. 그리고 나는 그 빈틈이 채워진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회식 당일 아침, 선희 주임은 부산 횟집 이야기를 꺼냈다. 부페를 돌아다니며 먹는 것보다 조용한 룸에서 앉아 먹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그제야 나는 ‘ 나도 사실은 조용한 방이 좋아’ 하는 속마음을 뒤늦게 꺼냈다.
“그럼 직원들 의견 물어보고 바꿀까요?” 그녀는 다시 한번 팀의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모두의 반응을 듣고, 비용과 지원금을 계산해, 자연스럽게 방향을 정했다.
며칠 전 점심 주문을 했을 때도 그녀의 감각은 드러났다. 나는 김치찌개 4인분을 주문했다. 별 고민 없이, 그냥 먹는 사람 수만큼 맞춰 주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다.
“팀장님, 김치찌개 3인분에 육회비빔밥 하나 시키면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요. 김치찌개도 안 남고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단순하게만 생각했는데 그녀는 항상 팀의 입맛과 남는 음식, 비용까지 함께 계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런 감각은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해내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숙직 일정도 그랬다. “팀장님, 내일 구의회 심의 있으니까 숙직 바꾸셔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숙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보지 못한 빈자리를 먼저 보고, 거기서 생길 불편을 미리 막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회식 당일, 선희주임은 마스크를 쓰고 병원을 다녀온 뒤 독감이라며 회식을 못하겠다고 했다. 몸이 안좋은것도 있지만 전염될까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저는 오늘 못 갈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정작 본인이 가지도 못할 회식을 위해 메뉴를 고르고 시간을 맞추고 예약까지 해놓았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회식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횟집으로 들어가니 종업원은 '김선희님으로 예약한 손님 맞냐고 물었다. 안내된 방으로 들어가니 4벌의 수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두툼하게 썰어진 회는 쫄깃졸깃하니 신선를 먹으면서 5벌이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너무 쉽게 그녀에게 기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일도 많은데 이런 자잘한 일까지 맡기는 건 부담이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편했다. 그녀가 곁에 있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졌다. 그것이 누군가의 에너지와 시간 위에 세워진 편안함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선희 주임의 성향은 이런 역할을 할 때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있고, 그 일이 누군가에게 기여한다고 느끼면 힘이 나기도 한다. 아마 그녀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전부 그녀의 몫이 되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재능도, 성향도 계속 사용하기만 하면 결국 지치기 마련이니까. 편안함은 늘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 위에 서 있다. 누군가의 배려가 한 사람에게만 쌓이면, 관계는 조용히 기울기 시작한다.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서로에게 상처나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어제의 회식은 작은 계기였지만 나는 그 속에서 오래 생각해야 할 무언가를 발견했다. 편안함은 함께 나눌 때 오래 간다. 그리고 누군가의 재능이 ‘당연한 역할’로 굳어지지 않도록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조금씩 찾아야 한다는 것.
그 마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회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선희 주임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덕분에 잘 먹었어. 다음엔 꼭 한 번 다시 오자.” 그 문자가 나의 배려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