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피하기 보다는 느끼고 인정해야 합니다.

에세이형 독후감

by 청아이

딸은 3주간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치원 선생님으로 타국에서 지내는 딸이 오랜만에 한국에 왔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은 그 자체로 선물 같았습니다. 딸이 다시 떠나는 날. 점심 식탁에 둘러앉은 네 식구의 마음속에는 아쉬움과 사랑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일요일 오전, 공항으로 가기 전 집에서 마지막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고춧가루와 청양고추가 들어간 낙지볶음을 냄비째 올리고 갓 지은 밥을 푸자,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습니다. 남편은 못내 서운한 마음을 사진으로 남기려 했고, 딸은 남동생에게 "내가 있는 동안 심부름 많이 시켜도 재밌었지?" 하며 장난스레 물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오이지무침과 콩나물무침을 작은 접시에 담았습니다. 친정어머니가 해주신 콩자반과 깻잎무침도 함께 올렸습니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시래기나물무침과 고사리무침까지 더해져 식탁은 빈공간이 없었습니다.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추어탕까지 국그릇에 담아내자, 푸짐한 식탁이 완성되었습니다. 딸은 예전에 캐나다로 떠날 때도 이렇게 진수성찬이었다며 그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 속 반찬들이 가물가물한 것을 보니, 그때는 반찬 하나하나보다 딸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꽉 차 있었나 봅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딸은 마지막까지 한국의 맛을 놓지 못했습니다. 편의점에서 전주비빔밥 삼각김밥을 사 가야겠다고 하였습니다. 편의점 안에서 딸은 진열된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물건을 사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한국에서 보고 먹었던 음식들을 잊지 않으려는 듯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습니다. 캐나다 친구들과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줄 선물을 찾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결국 전주비빔밥 삼각김밥과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를 사서 공항 의자에 앉아 함께 먹었습니다. 딸이 한 입 물더니 저에게도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건넨 김밥 한 입을 베어 물었습니다. 차갑고 달콤한 고추장 맛이 느껴졌습니다. 익숙한 맛이라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딸은 차가우니까 더 맛있다며 "음~ 음~"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간절하게 먹고 싶었고 느끼고 싶었던 맛이었나 봅니다.

딸은 한국에 와서 먹고 싶은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먹었습니다. 심지어 사 들고 집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종류는 많았지만 다 먹지 않고 남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겨 놓은 빵이며 샌드위치, 다양한 커피 등을 같이 먹다 보니 저도 살이 찐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문득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는 이런 음식들을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살 수 있고, 함께 먹을 수 있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나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멀리 가야 하고, 비싸고, 무엇보다 함께 먹어줄 사람이 없어 한국의 음식들이 그리웠나 봅니다. 딸의 이야기는 단순한 음식에 대한 갈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함께'라는 따뜻한 연결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입니다. 딸과의 헤어짐을 앞두고 느낀 이 깊은 감정은 그날 밤 참여한 독서 모임의 주제와 묘하게 맞닿아 있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딸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독서모임 '천무'에서 온라인 독서모임을 했습니다. 책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해야 할 다섯 가지 진실이었습니다. 첫째, 늙음은 피할 수 없다. 둘째, 병마는 피할 수 없다. 셋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넷째,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은 피할 수 없다. 다섯째, 나의 행위는 나의 연속이다. 저는 모임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두려움을 느낄 때 이 생각을 하면 좀 덜 두렵겠다는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암에 걸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한 K 선생님은 막상 그 상황에서는 이런 생각을 한다고 두려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제가 겪어보지 않고 말을 쉽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경험을 한 사람은 이론만 아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딸과의 헤어짐을 바로 앞둔 시점에서, 책에서 말한 '소중한 사람과의 헤어짐은 피할 수 없다'는 진실은 더욱 현실적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월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저는 혼자였습니다. 딸이 있는 동안도 딸이 저보다 먼저 일어난 날은 없었죠. 아침은 늘 혼자였습니다. 혼자 출근 준비하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런 익숙한 일상이 왠지 모르게 허전했습니다. 누군가 있다가 없는 자리는 마음을 허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방문을 열면 딸이 자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싸준 간장이 새지는 않았는지, 싸간 참기름과 들기름 병이 깨지지는 않았는지 온통 딸 생각에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헤어짐은 피할 수 없다고 어제 저녁 기억하고 싶은 문장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제가 그 상황을 맞으니 저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런 마음에 잠시 머물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두려워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좋지 않은 감정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험하지 않고는 남의 말만 들어서는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딸과의 이별에서 오는 허전함과 슬픔처럼 제가 직접 느끼는 감정적 경험들이야말로 독서 모임에서 얻은 지식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체화하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경험 속에서 저의 모습을 보고 깨닫는 것이 진정한 자기 성장의 발판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딸과의 이별을 통해 얻은 이 허전함과 슬픔 또한 저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월요일 아침 딸이 없는 빈자리는 예상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익숙했던 일상 속 작은 변화가 이토록 큰 허전함을 안겨줄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허전함 속에서 저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감정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느끼고 인정해야 할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요. 슬픔과 아쉬움도 결국은 사랑과 소중함의 다른 표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경험들이 저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다음 만남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와 사랑이 우리의 식탁을 가득 채우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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