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더 믿기로 했다.
얼마 전 줌 독서 모임에서 “지금 당신에게 있는 두려움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줌모임을 마치고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자식이 아플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웠다.
첫아이가 다섯 살이던 시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신장에서 소변이 역류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하얀 수술복에 작은 얼굴, 수술 모자를 쓴 채 침대에 누운 채 수술실로 옯겨졌다. 아이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나를 보고 방실방실 웃었다. 더 이상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내 품을 떠나자자지러지게 울었다. 닫히는 문 너머로 들리는 울음소리에 가슴이 찢어졌다. 남편과 나는 수술실 앞에서 눈물을 닦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딸은 훌쩍 자라 캐나다로 떠났고, 아들은 곧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멀리 있는 딸도 아직 곁에 있는 아들도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변한 건 시간뿐이다. 여전히 아플까 봐 걱정된다.
얼마전 나의 건강검진 결과서가 집으로 왔다.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데 왜 그럴까 의아했다. 간농양으로 입원했던 오빠를 떠올리니 유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생활을 바꿔야 할까,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건강 문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식 건강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 그럴까.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견디면 그만이다. 덜 아프든, 더 아프든, 결국 내 몫이다. 내가 감당하면 된다. 하지만 자식에게 벌어지는 일은 다르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약을 챙겨주고 몸에 좋은 걸 해줘도 아이가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라는 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내가 하라는 방식이 꼭 옳지도 않다.
딸은 최근에 휴가를 내어 한국에 왔다. 머무는 동안 한약을 지었다. 손발이 차다고 했다. 하지만 한약을 다 먹지 못한 채 캐나다로 돌아갔다. 약봉지만 가방에 넣어 갔다. 아들은 내성 발톱에 다한증이 있다. 군대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나는 이 걱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어릴 때는 조금만 열이 나도 밤새도록 곁을 지켰다. 약을 먹이고, 이마에 손을 얹고, 자꾸 깨워가며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그들이 아프면 나 대신 병원에 가야 하고 약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 회복도 스스로 해야 한다.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바라본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오히려 그것은 믿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키운 자식이 자기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믿음. 내 방식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다듬어갈 수 있다는 믿음.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뒤부터 나는 조금씩 걱정에서 자유로워졌다.
물론, 걱정은 여전히 마음을 들락날락한다. ‘지금 어디 아프지는 않을까?’, ‘먹는 건 제대로 챙기고 있을까?’. ‘군 생활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 그 질문 끝에 다른 문장을 하나 덧붙인다.
“그래도 잘해낼 거야. 그 아이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고 여전히 걱정한다. 하지만 이제 그 사랑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지켜보는 일, 기다리는 일, 그리고 믿는 일.
그것이 내가 자식 걱정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방식이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은 바로 그런 ‘믿음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