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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전쟁

0227

by 로움


금요일

엄마랑 저녁으로 알리오 올리오를 해 먹었다. 마늘을 많이 넣으니 맛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나는 가방을 시키고 엄마는 옷을 보고 있었다. 그때,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처음 잡힌 면접이었다. 합격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누군가 내 자기소개서를 읽었다는 게 재미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옆에서 엄마가 더 떨린다고 했다. 그 모습에 지지받고 있다고 느꼈다. 잠을 푹잤다.




토요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무덤덤했다. 먼 거리가 실감조차 나지 않는 그곳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1시에 잠에 들어 7시에 일어나, 디카페인 커피를 살지 콤푸차를 살 지 고민을 하다 둘 다 사버리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사진을 봤다. 카르키프 외곽 아파트에서 공습을 받은 노인의 사진이었다. 안아주고 싶었다. 방 안이 따뜻한데 추웠다. 친 러시아 반군이 한 마을을 포격해 유치원 건물이 피해를 봤다는 기사를 봤을 땐,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폭력을 폭력의 무게로 견디는 상태가 빨리 끝나버렸으면. 내가 지키고 있는 것들을 그들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요일

내일 면접이다. 오늘은 면접 예상 질문을 뽑아 여러 번 읽기를 반복했다. 의미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다른 사람들 흉내 내길 계속했다. 안 할 수 없었다. 아직 친구들에게는 면접 본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잘했어? 와 수고했어. 반복될지 모르는 확인 작업을 애초에 시작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연애사를 궁금해하면서도 듣기 싫어하는 그런 관계이니까.


면접이 끝나면 교보문구에 들려서 어지럽지 않은 시집을 살 것이다. 그 시집에는 젖은 옷을 빠르게 말리는 방법과 꽃을 살리는 방법이 적혀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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