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4
이것은 5월 4일의 일기다.
오늘 밤부터 비가 올 예정이라는 일기예보를 보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서 몸이 찌뿌둥하기도 했고, 풍경을 보며 머리를 비우고 싶기도 했다.
날씨는 생각만큼 습했다. 집을 나옴과 동시에 높은 습도에 숨이 막혔다. 흡. 나는 자연스럽게 아가미를 사용했다. 5년 전쯤인가, 나는 아가미 호흡법을 체득했기 때문에 습한 날씨에는 아가미 호흡법으로 숨을 쉬곤 한다. 세월이 지나면 인간의 몸은 아가미가 생기는 쪽으로 진화할 것이다. 숨을 쉬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오늘 산책은 재미가 없었다. 랜덤 플레이 리스트는 마음에 드는 노래를 추천해주지 못했고, 어이없고 웃긴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반가운 사람에게 전화가 오는 일도 없었다. 소득이 없는 산책은 집 도착이라는 목표를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
나오기 전까지 읽던 브래들리 소머의 소설 <피시볼>을 생각했다. 나만의 고층 건물을 만드는 상상. 27층 짜리 아파트, 이름은 세빌 온 록시. 피시볼의 아파트를 그대로 가져왔다. 세빌 온 록시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15층과 30층 사이에서 몇 층짜리 아파트를 만들까 고민하던 나에게 27층은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세빌 온 록시에 입주민을 채워 넣었다.
나는 11층에 거주하기로 했다. 12층에는 층간소음 전적이 없는 사람이 들어올 것이고, 옆 집에는 자주 마주쳐도 부담스럽지 않은 성격의 사람이 배정될 것이다. 그리고 세빌온 록시의 엘리베이터 이름은 간이역이다. 간이역을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고 있는 것이 간이역임을 모르겠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간이역을 지나치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밉지 않은 사람들이 가득 찼다. 이제 아파트의 불이 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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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상상을 하며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10시가 넘어있었다. 잠에 들기까지 세 시간 남았다.. 카톡 메이트 동생과 친구는 이른 출근을 위해 잠이 들었다. 나는 남은 세 시간을 온전히 홀로 채워야 한다. 곧 비가 내릴 것만 같다. 나는 제습기를 틀고 씻을 것이다. 그리고 아가미가 없는 채로 씻고 나와, 이웃이 돌아오길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