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1204
지난겨울
2021.12.04
눈이 생각보다 빨리 떠졌다.
누운 채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었지만, 눈이 건조해서 일어나야 했다.
커튼을 치지 않은 채 창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마셨다. 찬 공기로 바깥 온도를 예상해볼 순 있었지만, 날씨를 알고자 하진 않았다. (아마도 맑거나, 비가 오거나 운이 좋으면 눈이 왔을 거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끝내주는 영화 한 편이 보고 싶어 넷플릭스에 들어갔다. 썸네일에 마우스 커서를 대면 '나를 봐! 흥미롭지?' 하며 영화 일부분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Oh.. (im) Too Tired 서비스.
언제부터인가 밈으로 사용되어온'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말이 있다. 나를 위해 많은 선택지를 준비했다는 친절. 이 말 뒤에는 '그러니 이제 선택해봐.'가 생략되어 있다는 걸 감으로 안다. 근사 한말 뒤에 따르는 선택 독촉.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 몰라. (외침)
그건 그냥 마음이 가는 일.
많은 선택지는 자유와 피로를 동시에 준다.
결국은 익숙함으로 회귀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며 내 몸에도 격동적인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오전을 그렇게 보냈다.
오후엔 일을 했다.
프리랜서로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지 한 달 정도 지났나, 요샌 요청이 많다.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처음의 불안이 사라지자, 다른 형태의 불안이 찾아왔다.
황정은 작가님이 에세이에서 발음이 좋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셨던 것처럼. 나도 여러 번 말하고싶다. 감당감당감당감당감당.
감당이 겨우 귀엽게 느껴진다.
오후에도 일기예보는 보지 않았다.
나는 언제, 올해의 첫눈을 보게 될까.
나는 그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