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없는 하루, 그리고 우리 동네의 멋진 청년
요즘 깜빡하고 지갑을 집에 두고 나서는 일이 가끔 있다. 작은 실수이지만, 그날은 서울 출장이 있던 날이라 더 난감했다. 다행히도 함께 가는 직원이 기차역까지 태워줘서 일단 아침은 무사히 시작되었다. KTX는 미리 예약해둔 덕분에 카드 없이 탈 수 있었고, 지하철도 가방에 있던 현금 3,000원 덕분에 출장지까지 왕복은 가능했다.
점심은 계좌이체로 해결했다. 하지만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자동주문기에서는 애플페이가 되지 않아 또 동료에게 신세를 져야 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당이 떨어져서 뭔가 단 것이 간절했지만, 서울역에서는 계좌이체가 가능한 가게를 찾지 못해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저녁에는 처음으로 카카오페이 결제를 시도했다. 당황해서인지 주문을 세 번이나 반복했고, 다행히도 푸드코트 사장님이 “혹시 주문 잘못하신 거죠?”라고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취소하고 제대로 결제해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돌아와 집 근처까지 온 뒤에도 우여곡절은 끝나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 했는데, 좌석제 버스는 계좌이체가 되지 않아 결국 민망하게 차에서 내려야 했다. 다행히 일반버스에서는 계좌이체가 가능해 무사히 동네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문제는 하루의 마지막에 터졌다. 집에 들어가기 전 피아노 학원에 들러 연습을 하고 밤 10시 40분이 되어서야 귀가하려고 주차장에 갔는데, 평소엔 주차확인을 해주시던 원장님이 이날은 깜빡하고 퇴근하신 듯했다. 주차요금은 4,000원이었고, 주차권으로 2,000원은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안 됐다. 호출버튼을 눌러 계좌이체나 나중에 지급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계약상 불가능하다며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는 안내만 돌아왔다.
뒤에는 이미 차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중년의 아주머니 한 분이 “차 빨리 빼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고, 나는 놀라서 차를 후진해 옆으로 옮겨 그분이 먼저 나가시게 했다. 다시 호출 버튼을 눌러 상황을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결국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 그때 또 한 대의 차가 내 뒤에 섰고, 운전자가 내 차 쪽으로 걸어왔다. 불만을 들을 각오로 연신 미안하다고 하는데, 젊은 청년은 웃으면서 “”주차비 얼마예요?”라고 묻더니 “제가 계산해드릴게요”하며 손에 쥔 카드를 보여줬다.
Thanks God! 정말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며 계좌이체로 갚겠다고 했지만, 그는 괜찮다며 웃고는 자기 차로 돌아갔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멋진 청년이 있다니.
우리는 종종 세대를 나누어 이야기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노년층, 개발도상국에서 자란 중년층, 그리고 선진국처럼 성장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청년층. 이 세대들은 삶의 태도와 국가에 대한 기대가 다르고, 그래서 자주 세대 갈등이 이야기되기도 한다. 특히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공동체 의식이 약하고 이기적이라는 우려를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만난 한국 청년은 이웃의 어려움에 기꺼이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 따뜻한 배려에 감동한 나는 문득, 혹시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로 인한 지연에 짜증을 내며 싫은 내색하는 이웃은 아니였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신용카드 하나 덕분에, 그리고 한 청년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유쾌하게 마무리된 하루, 대한민국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