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금요일

by 이혜연

비 오는 금요일은 줄이 없는 무지 노트 같다. 내일의 짐에서 잠시 벗어나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먼저 계획된 것 없이도 좋은, 무엇을 쓰기보다 아무렇게나 낙서하며 마음을 자유롭게 방치해 둬도 좋을 것 같은 날이기도 하다.


꽃잔치가 끝났지만 푸른 잎들은 색이 더욱 진해지고 있고 여린 가지를 더 튼튼하게 살찌우고 있는 이 시기에 비가 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더군다나 내일을 기약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방탕이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그런 날이기도 하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일들을 잠시 미뤄두고 여름의 길목으로 가는 창을 연채로 얇은 이불을 덮고서 침대에 누웠다. 아직 오후의 해가 저 구름 뒤 어디선가 빛나고 있을 테지만 투 툭 투 툭 떨어지는 빗 사이로 새어 나오지 못한 채 세상이 어둑함 침묵으로 잠겨있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게으름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비가 오는 금요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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