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소나기가 오는 오후

by 이혜연
뜨거운 소나기가 오는 오후

멋모르고 뜨거운 냄비를 잡은 것처럼 여름이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나른함을 때리는 소나기가 내렸다. 퍼석한 일상에 한꺼번에 쏟아진 굵은 바람의 잔재들이 땅을 적시고 세상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깨워댔다.


벌써 한 해의 반절이 지나갔고, 우리에게 더 빠른 날들이 흘러가버릴 것이라는 걸 알려주듯이, 나태함에 주저앉아있지 말라는 듯이 죽비로 내리치는 것처럼 창밖을 휘두르고 갔다.오전 근무를 마치고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온 뒤라 집에 오니 긴장감도 사라지고 게으름이 스멀스멀 몸을 잠식해 들어갈 즈음이었다. 날이 뜨거우니 꽃들에게 물을 좀 줘야 하나 혼자서 고민할 때 밖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소리는 식물을 살리고 풀어진 몸을 깨우고 갔다. 가만히 흘러가는 유속에서는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정체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처음 자리에서 너무 멀리 흘러와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뭔가 바빴고 정신없었으며 마음을 쉬이 놓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나온 길이 먼지바람으로 걸어온 걸음을 모두 지웠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탈함이 밀려오는 날이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게으름에 몸이 허물어가던 그 시간 뜨거운 소나기는 몸과 마음을 깨우며 지나갔다. 계절이 변하고 있으니 너도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보라고. 오늘도 하늘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을 키우는데 열심이니 너도 너를 더 성장시켜 보라고, 여름이 오기 전 소나기가 먼저 땅을 적시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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