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따뜻했던 시간들

by 이혜연

연휴에 길이 막힐 걸 생각하고 새벽 3시에 쫓기듯 도시를 빠져나왔다. 물 댄 논엔 푸른 하늘이 걸려있고 모내기를 끝낸 논들은 까까머리처럼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골집에 가는 길은 언제나 그리움과 애틋함, 포근함으로 설레게 했다. 드나들 이 없는 대문을 묶어 둔 밧줄을 풀고 들어서니 잡초들이 누렇게 새어있었다. 훌쩍 자라는 풀들이 무서웠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제초제를 뿌리셨다고 했다.


생전 엄마는 마냥 듣기만 하는 사람이었고 허드렛일을 정성스럽게 해내던 분이셨다. 어느 교회에 다니시든 청소를 하시고 화장실청소는 도맡아 하셨다. 들은 이야기를 옮기지 않으니 옆집 아줌마는 엄마에게 비밀이야기를 많이 하셨었다.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목놓아 우셨는데 그때 그 따뜻했던 시간덕에 빈 집이 아직 생기를 놓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꽁꽁 묶어둔 대문을 풀자 또 다른 이웃집 아줌마가 갓 담은 김치와 밑반찬을 주고 가셨다. 친정엄마 없는 집에 매번 들러줘서 고맙다는 말에 자르르 마음이 아렸다. 엄마가 쌓아둔 장작불이 숯으로 남아 아직도 온기를 채워주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없는 시간에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온기를 여전히 조금씩 느끼며 살 수 있도록, 그렇게 나도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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