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추석 즈음의 마당은 덕석 위로 말려놓은 고추며 가지, 호박고지등으로 조각보처럼 색색으로 물들곤 했었다. 슬레이트 지붕 위로 푸르게 덩굴지던 호박은 노랗게 물들어 갔고 고샅에 세워둔 참깨들은 후드득 참깨를 쏟아내며 밤을 지새웠다. 오월에 말려둔 쑥을 꺼내 쑥떡 만들 준비를 하고 토란대도 불려 가을 반찬을 준비하다 보면 손바닥만 한 마당이 먹을 것 천지로 변해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곤 했었다. 매일 새로운 가을이 쨍한 햇살 속에서 익어가던 그 시절엔 괜히 마음이 들떠서 뭘 해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추석 대목에 열린 오일장에서 하얀색 목양말과 깨끗한 새 옷을 사주시면 행복의 역치는 최대치가 되어 보름달보다 마음이 더 풍성해지곤 했었다. 나이 든 요즘은 깨끗한 옷도 맘만 먹으면 사고 마트며 반찬가게에 없는 것 없이 꽉꽉 들어차 있는 음식 앞에서도 그때만큼의 마음의 포만감을 느낄 수는 없다.
너무 흔해져서 이제는 소중한 마음이 덜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그립고 따스한 사람이 멀리 떠나 그때의 맛을 다시는 느낄 수 없어져버려서일까. 추석이 다가오는 가을, 마당 위로 노랗게 익은 햇살 속에서도 바람이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