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앞에 선 여인

by 이혜연

계절이 바뀌니 세상의 색도 초록에서 빨강과 노랑으로 옷으로 갈아입으려 하고 있다. 밤새 내린 비 끝에 오소소 찬 바람이 불어와 어제까지 버티고 있던 여름도 힘없이 물러나버린 기분이다. 벚나무들은 벌써 마른 잎들을 떨구기 시작했고 은행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을이라고 별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마음이 들떠서 옷장을 열어보기도 하고, 거울에 서서 축 쳐 저버린 뱃살을 끌어올려 보며 이 옷 저 옷 몸에 대보기도 했다. 그러다 부스스한 머리가 눈에 띄어 미용실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했더니 기분 전환이 확실히 됐다.


이제 몇 십 년 전에 잊혀 버린, 그래서 여전히 내 맘 속에서는 20대의 풋풋함으로만 남아있는 첫사랑을 만난다 해도 못 본 척 피하지 않고 마주 보고 웃을 정도의 추레함을 벗어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가을은 세월에 낡아 지워져 버린, 그래서 애틋했던 예전의 감정을 다시 복기할 수 없는 서로의 관계를 서럽게 울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또한 낙엽 지는 거리, 어느 모퉁이에서 그이를 그리워한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는 유일한 계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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